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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 골든 서클(2017)
2017. 9. 25. 08:11 - 북북서


<킹스맨 : 골든 서클>, 2017, 매튜 본

사진출처 다음영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어느 정도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그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킹스맨>은 본질적으로 정치인들의 머리가 엘가의 음악에 맞춰 터져나가고 양 다리에 칼 의족을 단 여자가 비밀요원들을 두동강내는 영화였다. 이런 난폭한 영화가 그토록 대중적으로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 강한 B급 테이스트를 완충해 줄 "매너"가 있었기 때문이다. 폭주하는 똘끼와 키치함에 수트를 입히고 구두를 신겨 까리하게 꾸민 그 특유의 스타일리시함이야말로 <킹스맨>의 정체성이자 매력이었으며, 동시에 이 영화가 신선한 수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기도 했다.


<킹스맨 : 골든 서클>역시 처음엔 <킹스맨>이 개척해놓은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가 시작하면 영국 전역의 킹스맨 본부가 미사일을 맞아 파괴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전 세계의 마약시장을 배후에서 장악한 싸이코패스 마약왕 미스 포피다. 그녀는 자신의 마약을 이용해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 전편 마지막에서 구출해낸 스웨덴 공주 틸드와 행복한 동거 중이던 에그시는 살아남은 킹스맨 요원들을 규합하고 미국의 비밀 요원 스테이츠맨들과 함께 미스 포피의 계획을 저지해야 한다.


<킹스맨 : 골든 서클>, 사진출처 IMDB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처음에는 희미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위화감이 커진다. 그러다 미국의 비밀조직인 스테이츠맨이 등장하는 순간 폭발한다. 이것은 병맛이다. <킹스맨 : 골든 서클>은 거의 병맛 코미디 영화다. <골든 서클>의 B급 병맛 감성은 <킹스맨>의 그것에 비해 훨씬 말초적이고 저속하다. 전체적으로 많이 미국스러우며 개그의 색감도 한층 다채로워졌다. 센스 자체도 나쁘지 않아 정신이 아득해지는 미국식 개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많이 웃을 수 있겠다고도 생각한다. 그 화룡정점은 역시 엘튼 존이다. 카메오라더니 분량이나 역할은 웬만한 조연보다 많다. 조금 안 보인다 싶으면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며 등장해 관객의 정신을 아득하게 한다. 조심스럽게 예측해보자면 매튜 본은 이번에 거의 진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킹스맨>도 전혀 진지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진지한 척을 할 수는 있는 영화였다. <골든 서클>은 아니다. 


요는 균형감각의 부재이다. <킹스맨>이 A급의 외형과 B급의 본질 간의 교묘한 결합이었다는 이야기는 처음에 했다. <골든 서클>이 전작의 성공을 이어가려면 한층 진해진 병맛 B급 테이스트를 다른 영화적 요소가 완충해줘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액션은 좋다. 하지만 전편의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나 롱테이크 교회 시퀀스같이 방점을 찍어 줄 만한 장면이 없다. 악역은? 역시 발렌타인과 가젤에 비해 터무니없이 약하다. 싸이코패스 마약왕 미스 포피는 그 설정이나 역할만 보면 정말 좋은 가능성을 가진 인물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화면을 할애받지 못한다. 엘튼 존의 의아하리만치 많은 분량을 떠올려보면 다소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다. 줄리안 무어는 그 적은 분량에서도 최선의 연기를 해 주지만 안타깝게도 초반부가 지나가면 어떤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하며, 캐릭터성이나 존재감이 이상하게 희미한 찰리 역시 제대로 된 악역 구실을 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골든 서클> 마케팅의 한 축인 스테이츠맨은 어떤가 하면, 스테이츠맨은 더 나쁘다. 


<킹스맨 : 골든 서클>, 사진출처 IMDB


스테이츠맨은 이야기상 어떤 역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름부터 설정까지, 그들은 철저히 개그를 위해 만들어진 움직이는 스테레오타입이며 분량 자체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 영화가 내뿜는 미국식 B급 코미디의 바이브는 80% 스테이츠맨에서 나온다. 물론 패러디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캐릭터 자체가 패러디를 위한 소모품이라면 그것은 약점이 된다. 플롯을 이끌 인물이 없으니 이야기 자체가 얄팍해진다는 것이다. 고작 이런 캐릭터들을 위해 아카데미 수상자인 할리 베리와 제프 브리지스, <폭스 캐처>와 <헤이트풀8>으로 입지를 다진 채닝 테이텀을 캐스팅했다는 게 의아할 정도다. 페드로 파스칼의 캐릭터는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역시 뻔한 기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후반부 밝혀지는 그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코미디였다. 


<골든 서클>은 안타깝게도 <킹스맨>의 성공을 가능케 했던 놀라운 내적 균형이 무너진 영화다. A급의 만듦새는 약해졌고 B급의 본질은 더 진해졌다. 영화가 B급 테이스트에 매몰되었다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분명 <킹스맨>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매너"는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재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쉴새없이 파고드는 B급 취향의 개그는 유쾌하고 다채로운 대중 문화의 인용은 군데군데 교묘하며 직관적이면서도 화려한 액션은 여전히 좋다. 전편에 비하면 조금 모양이 빠지게 나오지만 콜린 퍼스 역시 여전히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썩 재밌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킹스맨>이 아닐 뿐이다.


<킹스맨 : 골든 서클>, 사진출처 IMDB


덧. 전작 <킹스맨>에서 마지막 힐드 공주의 애널 섹스 대사와 관련해 논란이 있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골든 서클>은 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조금 편집될 것 같기는 하지만(미국판 기준으로 쓴다) 상당히 의문스러운 설정과 그에 따른 노골적인 장면이 있으며 그 행위의 대상이 되는 여자 캐릭터 역시 어떤 도구로 소모될 뿐 어떤 캐릭터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전편에서 다름 에그시의 라이벌이었던 록시의 대우 역시 상당히 미묘하다. 자신이 문화예술에서 성차별과 관련한 문제에 예민하다면 주의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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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15. 10:00 - 북북서


<베이비 드라이버>, 2017, 에드가 라이트

사진출처 다음영화


할리우드에서는 한 해에 600편을 넘나드는 영화가 제작된다. IMDB에 따르면 2012년까지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무려 44,000편에 달한다. 비교의 대상을 같은 이야기 예술인 희곡이나 소설, 연극에까지 넓히면 그 숫자는 거의 체감상의 무한에 수렴한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이런 시점에서 흔하고 뻔하지 않은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은 대부분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한다. 첫째는 이미 본 적이 있는 이야기를 높은 완성도와 진정성으로 밀어붙이는 정공법이다. 둘째는 익숙한 재료들을 색다르게 배합한 다음 거기에 자신의 개성 한 방울을 넣어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전형적인 후자다. 그리고 꽤나 성공적인 후자의 예이기도 하다. 


<베이비 드라이버>, 사진출처 IMDB


이야기의 큰 얼개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주인공 베이비(이름이다)는 범죄자들을 무사히 도주시켜주는 운전사다. 천재적인 운전 솜씨와 기억력을 자랑하며 이제껏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행운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럴수가, 사실 그는 범죄자가 되기에는 너무나도 선한 영혼과 여린 양심을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고뇌하는 그의 앞에 운명의 여인이 나타나고... 그녀와 함께 도망치려는 그의 앞을 가로막는 범죄자들! 카체이스! 총격! 액션! 그리고 폭발! 쾅쾅쾅. 


하지만 <베이비 드라이버>는 이런 정석적인 전개 속에 뮤지컬이라는 소장르를 집어넣음으로서 이야기에 전혀 다른 색감을 입히는 데 성공한다. 뮤지컬이라 해서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합창을 시작하거나 하지는 않으니 안심해도 좋다. 대신 주인공 베이비는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다. 어렸을 적 당한 사고의 후유증으로 귀에 이명이 들리기 때문이란다. 그의 아이팟에서 나오는 음악이 바로 <베이비 드라이버>의 배경음악이다. 게다가 감독 에드가 라이트는 등장인물들의 동작과 액션을 이 음악에 따라 배치하는 묘기를 부려 놓았다. <베이비 드라이버>의 편집과 호흡은 음악에 맞춰 이루어지며 이야기 내의 액션과 전개가 다시 배경 음악에 영향을 미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초반부의 커피 배달 시퀀스이다. 대사, 효과음,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음악과 절묘하게, 그리고 촌스럽지 않게 맞아떨어지며 말 그대로 뮤지컬을 보는 것 같은 쾌감을 안겨 준다(이 시퀀스는 28번 재촬영되었으며 그 중 21번째 장면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캐릭터들을 활용하는 방식 역시 멋지다. 이야기의 큰 틀 자체는 상투적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위에서 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캐릭터를 몇 명 배치시킨 후 이들의 상호작용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방식은 흥미롭다. 크게 봤을 때는 분명 뻔한 전개지만 충분한 속도감과 의외성의 결과로서 제시되니 그 설득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 특히 제이미 폭스의 연기가 좋다. 중반부의 긴장감은 거의 그가 자아낸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주인공인 얀셀 앨고트 역시 자연스럽고 케빈 스페이시는 뭐, 항상 그렇듯 케빈 스페이시스러운 연기를 한다. 특히 이번 캐릭터는 거의 각본가가 캐릭터 이름을 케빈 스페이시로 놓고 각본을 쓴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케빈 스페이시스러운 캐릭터다. 딱 <21>의 케빈 스페이시를 생각하면 되겠다.


 <베이비 드라이버>, 사진출처 IMDB


하지만 내내 유쾌하게 질주하던 <베이비 드라이버>는 후반부에 이르러 그 관성을 다소 잃는다. 갈등이 표면화되고 격렬한 액션이 터져나옴에도 이야기는 장황해지고 늘어진다. 지나치게 편리한 게 아닌가 싶은 전개가 몇 군데 있으며 그를 해결하기 위해 캐릭터들이 조금 무너지는 듯한 느낌조차 든다. 영화의 메인 컨셉이라 할 만한 자동차 액션의 까리함도 분명 초반부에 비해 덜하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단순한 총격전은 이미 많은 영화에서 그 한계를 탐험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놀랍게도 <베이비 드라이버>는 결말에 이르러 이런 산만함을 수습해내는 능력을 보인다. 이런 류의 액션 영화에서 보기 힘든 우직함으로 이야기의 끝을 깔끔히 돌파해내는 것이다. 영리한 반전이나 기지 넘치는 전개 대신, 그냥 논리적이고 정직한 결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적어도 이런 종류의 케이퍼물에서 흔히 애용하는 캔디랜드식 결말은 아니다. 뻔한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예측할 수 없는 결말로 치달았어도 좋았을 것 같기는 하지만 뭐, 지금의 정공법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나름대로 로맨틱하기도 하고.


<베이비 드라이버>, 사진출처 IMDB


추천

신선한 자동차 액션을 보고 싶으신 분

음악적인 액션 영화가 보고 싶으신 분

로맨티스트


비추천

사랑을 외치는 애들이 눈꼴시우신 분

장황한 후반부를 견디기 싫으신 분

참신하고 영리한 이야기를 원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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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10. 02:26 - 북북서


<그것>, 안드레스 무시에티, 2017


비가 어둡게 내리는 날이다. 소년은 노란 우비를 입고 밖으로 나간다. 길가에 흐르는 빗물에 형이 만들어준 종이배를 살짝 띄운다. 와, 뜬다. 소년은 신이 나서 흘러가는 종이배를 따라 뛰어간다. 그러나 그만 앞에 있는 표지판을 보지 못하고 부딪쳐 넘어지고 만다. 그리고 그 사이 종이배는 그만 하수구로 흘러들어가 버린다. 소년은 일어나 망연자실하게 하수구를 들여다본다. 그러나 거기에 무언가가 있다. 새하얀 얼굴을 한 삐에로다. 한 손엔 소년의 종이배를 들고 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꿈인가? 소년은 혼란스럽다.


<그것>은 스티븐 킹의 소설 <그것(it)>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영상화로는 1990년에 제작된 미니 시리즈에 이어 두 번째다. 첫 번째 페니와이즈는 <록키 호러 픽쳐 쇼>의 팀 커리였다. 이번엔 빌 스카스가드다. 들리는 말로는 그의 연기가 너무나 소름끼치는 나머지 아역 배우들이 정말로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단다. 물론 어느 정도의 과장이 섞였겠지만, 뭐 그런대로 속아 넘어가 줄 만한 것 같다. 빌 스카스가드의 페니와이즈는 성공적이다. 얼굴은 섬뜩하고 목소리는 기괴하며 행동거지엔 동화적인 크리피함이 가득하다. 게다가 그에겐 팀 커리가 누리지 못했던 컴퓨터 그래픽의 축복까지 있지 않은가(도리도리춤을 비롯해 조금 과한 장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덕분에 빌 스카스가드의 페니와이즈는 어느 정도는 보통 삐에로 같았던 팀 커리의 페니와이즈와 달리 온갖 징그러운 변신과 환각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아이(와 관객)들을 괴롭힌다. 


<그것>, 사진출처 imdb


하지만 정말로 너무나 무서워 혼자 샤워하러 들어가기가 꺼려질 정도의 호러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물론 무섭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여러 가지 소장르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호러 시퀀스가 준비되어 있으며 15세 관람가가 맞나 싶은 묘사도 종종 등장한다. 상기했듯 페니와이즈는 그 생김새부터가 너무 소름끼치게 생겼고(이건 내가 삐에로를 무서워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위에 붙인 사진을 잘 못 쳐다보겠다) 호러 시퀀스의 연출이나 구성 역시 무척 좋은 편이지만, 막상 그 무서움은 조금 약한 감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스티븐 킹의 원작 <그것> 자체가 자극적인 무서움을 추구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의 주인공은 빌 덴브로를 위시한 "루저 클럽(Loser's Club)"의 아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페니와이즈의 표적이 된다. 아이들은 도망가고 비명을 지르며 겁이 질려 운다. 서로에게 심한 말을 하고 등을 돌려 고립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결국 다시 일어서서 페니와이즈에게 맞선다. <그것>은 이런 이야기다. 말하자면 개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악에 맞닥뜨린 아이들의 이야기며, 동시에 그들이 어떻게 그 악과 맞서 싸우며 그 악을 두려워하는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지에 관한 일종의 고전 모험극이자 성장 드라마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의 초점은 철저히 아이들에게 놓여 있다. 감독은 일곱 명이나 되는 이 아이들에게 각각의 개성과 배경, 성격을 일일히 부여하는 수고를 들여가며 이들의 캐릭터를 구축한다. "루저 클럽"은 각자 가정폭력, 인종차별 등 갖가지 현실적인 문제에 고통받는 이들이며 영화는 그 고통의 묘사에 페니와이즈와 비슷한 양의 화면을 배분한다. 왜? 그만큼 이들의 단결이 이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페니와이즈는 물론 지독히도 소름끼치는 괴물이며 호러를 주도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아이들이 극복해야 하는 두려움을 실체화한 하나의 상징으로서 기능한다. 페니와이즈는 극복될 때에 의미가 있는 괴물이며 이는 <그것>이 전체적으로 동화나 우화스러운 분위기를 띄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 사진출처 imdb


정말 무서운 공포 영화를 보려고 했다면 실망할 공산이 크다. <그것>은 끔찍한 괴물 영화가 아니다. 그런 끔찍한 괴물과 맞서 싸우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억지로 끌어다 붙이자면 정치적인 요소를 제거한 삐에로 버전 <괴물>과도 조금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성장극으로서의 완성도는 어떤가?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간혹 지나치게 배경음악이 튄다거나 주인공이 너무나 용감한 나머지 답답한 부분이 있다거나 하는 사소한 허점들을 제외한다면, <그것>은 멋진 이야기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풍기는 고전 영화스러운 바이브 역시 80년대의 배경과 잘 맞아 떨어지며 이런 드라마적인 요소를 강화한다. 여기서 호러 영화는 무서워야 호러로써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할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이제껏 단순한 자극을 위해 빈약한 이야기를 지어다 붙인 수많은 영화들을 떠올려 보자. 제대로 된 이야기가 선행한 뒤 그 위에 얹힌 호러 영화라니, 대체 얼마 만인가? 


<그것>, 사진출처 imdb


추천

아이들의 성장물을 좋아하시는 분

삐에로가 무서우신 분

스티븐 킹의 팬이신 분


비추천

정석적인 호러 영화가 보고 싶으신 분

삐에로가 너무너무 무서우신 분

하지 말란 걸 하는 아이들이 너무 답답하신 분


덧. 스티븐 킹의 원작은 과거 어렸을 적의 루저 클럽과 어른이 된 루저 클럽의 두 시점이 병행해서 전개된다. 이번 영화 <그것>은 철저히 아이들의 이야기로만 전개되며 따라서 영화가 끝난 뒤 사실 이것은 챕터 1이었읍니다, 하고 변명한다. 어른들의 이야기가 될 챕터 2를 기다려 보자. 


덧2. (스포일러?) 원작 후반부 충격적이었던 그 장면, 루저 클럽 아이들이 6:1로 섹스를 하는 장면은 (당연히!) 나오지 않는다. 원작 기준으로도 너무 극단적인 장면이었으니 혹시 영상화되리라 기대한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아이들의 나이를 생각하자. 뭐 스티븐 킹은 루저 클럽이 하나가 되면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메타포라고 둘러대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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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믹 블론드(2017)
2017. 9. 7. 00:16 - 북북서


<아토믹 블론드(Atomic Blonde)>, 2017, 데이빗 레이치

사진출처 다음영화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베를린, 영국 첩보원 제임스 가스코인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영국 정부는 비상이 걸린다. 그에게는 전 세계 모든 스파이의 정체가 기록된 비밀스러운 리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슈퍼 스파이 로레인 브로튼은 이 리스트를 회수하라는 임무를 받지만 이 리스트를 노리는 것은 (당연히) 그녀만이 아니다. 소련과 미국, 그리고 프랑스 역시 저마다 꿍꿍이가 있으며, 그녀를 도와줘야 할 베를린 담담 요원 데이빗 퍼시벌조차 어딘가 수상쩍은 냄새가 난다. 게다가 등장인물 중 한 명은 소련의 이중 첩자 짓을 하고 있단다. 도대체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로레인은 모든 방해를 물리치고 리스트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인가?


여러가지가 생각나는 영화다. 스토리는 존 르 카레의 소설 같고 화면의 질감은 <존 윅> 시리즈의 그것을 닮았다. 액션의 설계나 동선은 자연히 <제이슨 본>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며 주인공 로레인 브로튼의 캐릭터는 고전 슈퍼 스파이들이 으레 그렇듯 제임스 본드에게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심지어 주인공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전형적인 본드걸이 등장하기까지 한다(미묘한 부분이긴 하다. 이왕 샤를리즈 테론이 원톱으로 활약하는 영화인데 수동적인 본드보이(...)가 등장해도 신선하고 좋지 않았을까). 


이 영화의 장점은 뚜렷하다. 단언컨대 <아토믹 블론드>는 올해 최고의 액션 영화 중 하나다. 약간 리버브가 걸린 듯한 타격감도 멋지고. 치고 받는 고통이 관객들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한 필사적인 액션도 멋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을 집행하는 샤를리즈 테론이 너무 멋지다. 중반부 총에 맞은 동료 스파이를 보호하며 펼치는 7분간의 롱테이크 계단 격투신이 특히 압권인데,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영화에서 샤를리즈 테론은 소위 여전사나 미녀 스파이 같은 전형성을 전혀 배제한 채로도 주먹 하나, 발길질 하나에 굉장한 설득력을 부여해낸다.


두번째 장점은 영화 자체를 둘러싸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이다. 전체적으로 낮은 채도에 형광빛 네온 색감, 특히 제목 그대로 주인공의 머리 색깔(아토믹 블론드(Atomic blonde)는 플래티넘 블론드(Platinum blonde)라고도 불리며 하얀 백금발을 뜻한다)로 화면에 포인트를 주고 있는데 이게 또 굉장히 클래식한 힙함이 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내내 특유의 베이스를 앞세운 80년대 음악들이 신나게 흘러나온다. 약간 냅다 틀어댄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80년대 음악을 좋아한다면 매력적인 경험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아토믹 블론드(Atomic Blonde)>, 사진출처 imdb


하지만 <아토믹 블론드>는 그 단점 역시 굉장히 분명한 영화다. 뒤로 갈수록 붕 뜨는 플롯이 바로 그것이다. 플롯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말했듯 존 르 카레 소설의 그것을 닮은 음모와 배신의 플롯은 영화가 끝난 뒤 곱씹어보면 상당히 잘 짜여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의외로 결말의 복선 또한 충실히 심어져 있다(스파이글래스의 대사를 주의깊게 보자). 하지만 정교한 플롯은 당연히 그것을 잘 관객들에게 전달해 줄 좋은 스토리텔링이 필요하고... 아쉽게도 <아토믹 블론드>는 그런 부분에서 그리 섬세하지 못하다. 특히 빠른 전개가 이어지는 후반부에 이르면 캐릭터와 플롯이 잘 붙지 않는 느낌이 강하게 들며, 급기야는 거기까지 그런대로 열심히 끌어온 이야기가 너무나 기계적으로 결말만 탁탁탁 제시하고 끝나 버린다. 굉장히 아쉬운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완벽한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약간의 넘겨짚기가 허용된다면, 결국 <아토믹 블론드>는 제작 단계부터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영화가 아니라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영화였던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 이미지란 바로 센서블한 80년대 음악을 배경으로 샤를리즈 테론이 네온빛 가득한 베를린을 누비며 적들을 후려패는 모습이리라. 단순히 그 이미지를 충실하게 재현했는가만을 따져본다면,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 다른 요소는 부수적이라 판단했다면 <아토믹 블론드>는 더없는 성공이다. 


아토믹 블론드(Atomic Blonde)>, 사진출처 imdb


추천
샤를리즈 테론이 신나고 멋있게 남자들을 후려갈기는 모습을 보고 싶으신 분
80년대 음악과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분
제대로 된 액션이 보고 싶으신 분

비추천
진지하고 교묘한 냉전 스릴러를 좋아하시는 분
80년대 음악을 싫어하시는 분
깔끔하게 끝나는 영화가 좋으신 분


덧. 그다지 많이 잔인하다 할 만한 부분은 없으나 수위가 상당한 베드신이 있으므로 마음의 준비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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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 종의 전쟁(2017)
2017. 9. 3. 00:50 - 북북서


<혹성탈출 : 종의 전쟁>, 맷 리브스, 2017

사진출처 다음영화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사실 조금 뜬금없는 영화였다. 때는 2011년도, <블랙 스완>이 상반기를 장악하고 하늘엔 아이언맨과 토르가 날아다니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개막을 알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꼬질꼬질한 원숭이가 한 마리 튀어나온 것이다. 그것도 무려 38년이나 전에 끝났던 시리즈의 부활을 선언하며 말이다!(팀 버튼의 2001년도 <혹성탈출>은 영화 프랜차이즈라기보다는 원작 소설의 재 영화화에 가까우니 제외하도록 하자) 한때 덕후들 꽤나 거느리던 시리즈였다고는 하지만 왜 굳이 이제와서? 게다가 <혹성탈출>이라는 제목의 어감은 요즘 시대 기준으로는 어떤 B급 SF의 바이브까지 풍기지 않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게 상당히 재밌었던 거다. 고작 한 마리 원숭이라고 생각했던 시저가 마지막에는 거의 피흘리는 스파르타쿠스처럼 보였다. B급 SF는 커녕 생각외로 너무 장엄하고 애틋하고, 얼핏 직선적인 스토리를 팽팽하게 몰아대는 힘이 마치 스필버그 영화의 그것을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CG로 그려낸 유인원들은 대부분의 인간 배우들보다도 자연스러우니 대체 무슨 일인가. 


심지어 3년 뒤인 2014년 개봉한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은 더욱 훌륭했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혹성탈출> 시리즈의 유인원들은 인간의 안티테제임과 동시에 인간 사회의 은유로서 기능한다. 인간과 함께 비춰질 때는 인간이 아님에도 인간다운 주체로서 소위 "인간성"(와, 인간탈트)에 대한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유인원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한 이후부터는 인간 사회의 갈등과 문제점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기도 한 것이다.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에서 유인원의 리더가 된 시저와, 그의 아픈 고뇌에도 불구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관계는 그런 의미에서 다층적이다. 조금 오버하자면 거의 그리스 비극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혹성탈출 : 종의 전쟁>, 사진출처 imdb


그리고 그 주제와 이야기를 이어받아 이 트릴로지를 마무리하는 것이 바로 이번 <혹성탈출 : 종의 전쟁>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시저와 그의 유인원 무리는 상당히 암울한 지경에 처해 있다. 군인들은 계속해서 유인원들을 공격하며 사상자와 배신자가 넘실거린다. 시저는 코바 사건 이후 굳건하던 멘탈이 다소 불안정해졌고 군인들을 이끄는 "대령"은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으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 상황에 가족과 인간의 여자아이, 그리고 인간 측 사정이 얽히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스파르타쿠스>였다. <혹성탈출 : 종의 전쟁>은 영화 중간에 아예 "Ape-calypse Now"라 휘갈겨 쓰인 그래피티가 등장하기까지 하는 만큼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기독교적 메시아인 시저를 탄압하는 맥컬러 대령은 <지옥의 묵시록>의 커츠 대령의 레퍼런스임이 거의 분명해 보이는데, 플롯에 있어 그의 역할이나 최후를 맞는 방식이 특히 그렇다. 


그리고 이 맥컬러 대령(사실 이름은 군복에만 써 있고 영화 내내 그냥 "대령(The Colonel)"이라고만 불린다) 이야말로 시저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로써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이다. 그는 커츠 대령이고 모세를 탄압하는 파라오이며 동시에 목적을 추구하는 방법론에서 시저와 대조를 이루는 안타고니스트다. 각자 한 집단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두 캐릭터가 치열하게 대립하다가 마지막에 같은 수준에 이르게 된 뒤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전개는 아이러니하며 그만큼 멋지다. 새로운 <혹성탈출> 시리즈가 좋은 이유는 이처럼 한 영화에 여러 가지 층위가 쌓여 있다는 점인데, 이는 보다 접근을 가능케 하며 보고난 후가 보는 순간만큼 재밌는 영화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유일하게 텐션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는 나쁜 원숭이(Bad Ape)나 상징하는 바가 명확한 암살자(...) 노바 역시 지나치게 기능적으로 소모되지 않으며 이야기에 양감을 부여한다.


<혹성탈출 : 종의 전쟁>, 사진출처 imdb


이야기를 묵직하게 밀고 나가는 시리즈 특유의 힘은 여전히 건재하다. 시저를 모션 캡쳐한 앤디 서키스를 필두로 한 배우들의 연기 역시 흠잡을 곳이 없어 화면 내내 고요한 듯 팽팽한 에너지가 가득하다. 다만 <혹성탈출 : 종의 전쟁>은 아쉽게도 그 만듦새에 있어서는 앞의 두편보다 조금 약한 편이다. 감정선이 충분히 쌓이기 전에 다소 급하게 이어붙여진 장면들이 보이며(루카와 노바의 벚꽃 신이 대표적이다) 결말부 갈등이 해결되는 방식 역시 성서와 모세의 은유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조금 지나치게 편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종의 전쟁(원제로는 War)"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면서도 중후반부 유인원들의 목적은 전쟁이 아닌 탈출과 생존인 점도 미묘한 부분이다. 조금 더 스케일이 큰 무언가를 기대했던 관객이 많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진화의 시작>에서 발단하고 <반격의 서막>에서 위기에 다다른 시저의 여정은 <종의 전쟁>에서 절정과 결말을 맞는다. 무수한 희생과 고뇌를 이어붙여 다다른 마무리이다. 그래서 그 끝은 어땠느냐 하면, 나무랄 데 없는 것 같다. 물론 참신한 반전은 없다. <혹성탈출> 시리즈는 끝까지 애매한 기교나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정공법이고, 견실하다. 어떻게 이 난데없이 튀어나온 시리즈가 이렇게 우직할 수 있었을까. 38년 전에 완결되었던 영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리즈를 다시 만드는데 불안하진 않았을까? 그만큼 자신들이 가진 소재에 확신이 있었던 걸까. 난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로써 새로운 <혹성탈출> 트릴로지는 21세기 가장 성공적인 트릴로지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이다. 시리즈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나오면 두근거리며 챙겨봐야 할 또 하나의 프랜차이즈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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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벨 : 인형의 주인>, 2017, 데이빗 F 샌드버그

사진출처 다음영화


<컨져링> 시리즈의 애나벨 인형은 진짜 진짜 너무 무섭게 생겼다. 영화 설정상으론 애들 인형이던데 아니 세상에 대체 누가 애들 장난감에 저런 흉칙한 얼굴을 달아놓는가 말이다. 잠든 딸 이불이라도 덮어주려 방에 들어갔는데 어둠 속에 저렇게 생긴 게 우두커니 앉아 있어 봐라. 최소 비명이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대로 심장마비다. 영화 소품이었기에 망정이지 진짜로 저런 게 만들어져서 팔렸다면 엄마 아빠 여럿 실려갔을 게 분명하다(이 시리즈의 모티브인 실제 애나벨 인형은 그냥 귀엽게 생긴 봉제인형이다).


그리고 이 애나벨 인형을 가지고 제작된 영화 <애나벨>은 2014년 당시 전 세계에서 제작비의 10배 가까이를 벌어들인 흥행작이 되었다. 대히트를 친 <컨저링>의 모멘텀이 이어지고 있었던 데다 상기한 애나벨 인형의 크리피함까지 더해지니 스핀오프로서는 유리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완성도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다소 미묘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가 없었다. 몇몇 시퀀스는 분명 상당히 무서웠지만 대신 그것들을 엮어내는 이야기는 자주 어수선해졌다. 여주인공을 위시한 배우들의 연기 또한 썩 훌륭하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었으며, 서스펜스를 쌓는 기법이나 호러 장치의 참신함이 <컨저링>의 그것에 비하면 신선하다고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였을까. <애나벨 : 인형의 주인>은 다시 본격적인 하우스 호러로 회귀하였다. 거대한 집이 있고 귀신들린 인형이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한 무리의 여자애들이 그곳에 들어가 살게 되는데, 이들은 당연히 하지 말란 짓을 하고 들어가지 말란 곳을 들어가며 귀신들에게 온갖 빌미를 다 제공한다. 쇼에 쓰일 배경과 인물, 장치가 소개되는 전반부가 지나가고, 음침한 밤이 되면 애나벨 인형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지런하게도 첫날 밤부터 바로 말이다. 


무서운가 하면, 무섭다. 제임스 완과 데이빗 F 샌드버그(포스터에 나와있듯 <라이트 아웃>의 감독이다. <애나벨>의 감독은 <인시디어스>시리즈와 <컨저링>의 촬영감독이었던 존 R 레너티가 맡았다)는 하우스 호러의 어떤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장르 성격상 처음 보는, 완벽히 신선한 트릭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퀀스마다 약간의 트위스트를 섞어 놓았고, 거기에 저 인형이 더해지니 많이 무섭다. <컨저링>의 지하실 박수 시퀀스를 생각해 보자. 닫히는 문, 어둠, 그리고 자꾸 꺼지는 불빛. 뻔한 전개임에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지 않던가. 또한 악역이라 할 수 있는 애나벨 인형 측 악령 역시 역대 <컨저링> 시리즈 중 가장 강하다. 십자가나 성경에도 딱히 영향을 받는 것 같지는 않으며 직접적인 살인이나 물리력의 행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컨저링 2>의 수녀 귀신 역시 강하긴 했으나 이쪽은 자신의 이름과 약점을 미리 알려주는 친절함(...)역시 겸비하고 있었기에 제외한다. 


스토리는 평이하다. 보고 난 뒤 생각해보면 역시 전형적인 스토리인데, 막상 영화를 보는 동안엔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는 느낌이다. 사실 여기서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미스터리를 짜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리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사실 애나벨 인형은 착한 아이였답니다"식으로 뒤집어엎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애나벨 인형이 저 흉칙한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하지만 역시 군데군데 이야기의 요철이라고 할까, 튀어나온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진행되려면 아이들이 계속 집에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한 개연성이 조금 설득력이 약하다거나 하는 식이다. 아니, 누가 봐도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오, 너희들 힘들었지, 얼른 가서 자렴."하고 다시 방으로 돌려보내는게 가당한가. 그것도 사람이 죽었는데! 딱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설정도 아니고 말이다. 이 정도는 하우스 호러를 성립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중간중간에 나오는 "직접적인" 장면들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일단 <컨저링>이나 <컨저링 2>보다는 잔인한 영화인 만큼(잔혹하게 죽는 피해자들이 나온다) 악령 자체도 상당히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대부분의 시퀀스에서 그 기능에 충실한 편이나, 간혹 서스펜스를 터뜨려줘야 할 부분에서 그 디자인이라던지, 보이스톤이라던지가 지나치게 상투적이라 조금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이는 <컨저링>시리즈의 서스펜스가 대부분 원패턴인데서 기인하는 점도 있다. <컨저링>, <인시디어스>등의 무서운 장면은 대부분 이상한 일의 발생 -> 낚이는 인물 -> 이상한 일 2(여기서 복선을 회수) -> 소오름 -> 도망가려 하나 실패 -> 갑자기 평화로움 -> 끝인가? -> 쾅 의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작 <애나벨>은 컬트 살인마의 혼이 애나벨에 들어간 것이 애나벨 인형의 기원이라 그렸다. 하지만 제임스 완은 조금 약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애나벨 : 인형의 주인>에서 애나벨 인형의 기원은 다소 스케일이 커졌다. 그리고 이야기는 원을 그리며 다시 <애나벨>과 이어진다. 접합부는 어떤가 하면, 나무랄 데 없는 것 같다. 원제가 Creation인데 그것을 인형의 주인이라 번역한 것이 조금 의아했으나 끝에 가서는 이해하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애나벨 : 인형의 주인>은 애나벨 인형이 아니라 그 주인, 애나벨 히긴스의 영화이다. 원작(...)이라고 해야 하는지, 실제 애나벨 사건에 대한 오마주도 등장하니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난다.


요약하자면, <애나벨 : 인형의 주인>은 썩 잘 만든 호러 영화이다. <컨저링>과 <컨저링 2>의 스타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무서웠다. <컨저링> 시리즈를 좋아했다면 좋아할 영화이다. 무서운 영화를 찾는대도 좋아할 영화이다. 영화 평을 캡쳐한 짤이 유행이던데 실제로 뒤에 앉은 분이 자꾸 팝콘을 뿌리시더라.


<애나벨 : 인형의 주인>


추천

여름이고 하니 무서운 게 땡기시는 분

<컨저링>시리즈를 재밌게 보셨던 분

인형이 무서우신 분


비추천

아귀가 딱딱 맞는 호러를 좋아하시는 분

복잡한 미스터리를 좋아하시는 분

무서운 걸 싫어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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