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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홀덤
2017. 9. 24. 03:38 - 북북서


<텍사스 홀덤>, 원사운드. 디스이즈게임 연재.


9월 14일, <텍사스 홀덤>이 25화로 완결되었다. 일주일이 넘게 지난 지금에서야 알았다. 내가 무관심했던 탓이지만 원사운드 특유의 악랄한 연재 주기를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텍사스 홀덤>은 2012년 3월 27일 첫 화가 올라왔었다. 2017년 9월 14일까지는 5년하고도 반 정도의 시간이다. 일수로 따지면 약 1998일 정도가 나온다. 1998일에 25화다. 누구도 다음 화가 언제 올라올지 알지 못하는 만화였다. 그리고 정말로 다음화가 올라오면 그때까지의 줄거리와 감정선을 되살리기 위해 1화부터 다시 읽어봐야 했다. 대체 그런 불친절한 만화를 왜 보냐고? 그러게 말이다. <텍사스 홀덤>이 정말 재미있지만 않았다면 나도 진작에 때려쳤을 거다.


<텍사스 홀덤>은 동명의 포커 룰을 소재로 한 만화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던 주인공이 전업으로 포커를 치는 갬블러 팀에 스카웃되어 APPT 세부 토너먼트에 나가게 되는 이야기다. 여기서 카이지나 도박마 등지에서 나오는 화려하고 잔혹한 도박을 생각하면 안 된다. <텍사스 홀덤>은 실제 프로 포커 플레이어를 본뜬 캐릭터들을 다수 등장시키고(나노노코나 임영선은 물론 베르트랑과 홍진호까지 나온다!) 유명한 게임 진행을 오마주하는 등 최대한 현실적인 포커를 묘사하려고 노력한다. 포커를 하나도 모른다고? 그래도 전혀 상관없다. 어느 게 높은 카드인지, 블라인드가 뭐고 리버 카드가 뭔지 하나도 모른대도 대충 어떤 형태로 돌아가는 게임인지 정도만 알면 충분하다. 일본 장기를 몰라도 <3월의 라이온>이 재미있고 농구를 몰라도 <슬램덩크>가 찌릿찌릿 하듯이 말이다.


<텍사스 홀덤>, 원사운드. 디스이즈게임 연재.


그리고 무엇보다 빛을 발하는 것은 원사운드의 스토리텔링이다. 만화가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믿는다. 그림을 잘 그리는 타입과 이야기를 잘 하는 타입이다. 원사운드는 여실히 후자다. 미니멀하고 동글동글한 작화를 살린 개그 만화로 유명하지만 그의 진가는 항상 병맛의 탈 아래 숨겨진 서늘한 통찰이었다. <텍사스 홀덤>에서 그는 그간 자제해왔던 진지함을 마음껏 풀어놓는다. 주인공 기수는 프로게이머가 된 것에 후회를 안고 사는 인물이다. 남들처럼 공부하고 대학도 나오고,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 늘 가슴 한켠에 미련을 가지고 있다. 기수 뿐만이 아니다. 그가 포커에 입문하게 되며 만나는 모든 이들 역시 각자 자신만의 행복과 불행이 있다. 이는 <텍사스 홀덤>이 단순한 도박 만화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텍사스 홀덤>에서 포커는 결국 삶의 은유이다. 포커는 운에 의지하는 게임이 아니다. 우리는 어느 카드를 손에 쥘지 결정할 수 없고 어느 카드가 바닥에 깔리게 될 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일단 카드가 나눠지고 난 뒤 어떻게 할 것인지는 오롯이 우리의 결정이다. 좋은 카드가 오지 않은 불운을 저주할 것인가, 쥔 카드를 가지고 싸워 볼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답은 없다. 있는 것은 우리의 판단과 그 판단을 쫓아갈 용기 뿐이다.


<텍사스 홀덤>, 원사운드. 디스이즈게임 연재.


하지만 역시 25화라는 숫자는 조금 짧게 느껴진다. 조금 더 시간과 분량을 들여 자세하게 풀어 갔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후반부 급전개와 이어지는 결말이 특히 그렇다. 다소 급하게 나열된 느낌이 강하며 몇몇 캐릭터, 특히 영선은 무언가 더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무려 1998일에 걸쳐 연재된 만화인 것이다. 특히 21화와 22화 사이에는 1년하고도 4개월의 공백이 있었다. 1년하고도 4개월 동안 멈춰 있던 만화가 이렇게 멋지게 완결되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물론 정상적으로 연재가 진행되었다면 조금 더 균질하고 만듦새가 좋은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쉬움은 아쉬움이고 성취는 성취다. 다만 그래도 역시 원사운드의 다음 장편은 주기적인 연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이 만화만큼 재미있질 말던가. 보고싶은데 보지 못하는 고통은 <텍사스 홀덤>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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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셰스쿠의 마지막 연설
2017. 9. 11. 17:20 - 북북서

역사가 그 방향을 바꾸는 순간을 본 적이 있는가?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의 초대 대통령이자 역대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이다. 집권 초기엔 그래도 국가 경제를 신경쓰고 자본주의 진영에 화해의 제스쳐를 보내는 등 바람직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였으나, 북한과 중국을 방문하고는 그만 독재자 뽕에 취해 흑화해버린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적인 악행을 몇 가지 열거하자면 우선 자신과 영부인 엘레나의 생일을 국경일로 지정하며 스스로를 '카르파티아 산맥의 천재', '정열적이고 총명하며 매력적인 인격의 우리의 영원한 지도자(길기도 하다)'라 칭하는 우상화 정책을 폈다. 공무원과 군인들에게는 자신의 자서전을 강매했으며 자신의 작은 키(165cm)에 컴플렉스가 심한 나머지 자신보다 키가 큰 사람과는 결코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한다. 경제가 파탄나 국가의 채무가 130억 달러를 넘기고 국민들이 굶어죽어가고 있는데도 수도 부쿠레슈티의 1/3을 차지하는 초거대 왕궁 '인민 궁전'을 짓는 사치를 부리는가 하면, 자신의 애완견에게는 TV와 전화기가 딸린 전용 침실과 개밥을 미리 먹어보는 전속 기미상궁(...)을 하사하는 엽기적인 짓을 벌이기도 했다. 이렇듯 국고 바닥을 긁고 있는 상황에서 대대적인 인구 증가 정책을 펴 전국의 고아원만 북적거리게 만든 것은 유명하다. 


또한 인간성 자체도 상당히 결여되어 있었다. 그 당시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타인에 관한 배려는 커녕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수도 부쿠레슈티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 생존자 구조 작업 때문에 수도의 복구가 더뎌진다며 잔해를 그냥 불도저로 밀어버리라 명령, 생존자들이 있음이 분명함에도 무너진 잔해를 통째로 으깨버린 사건은 유명하며, 아들이 잠시 해외로 나간 사이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여자를 병사들을 시켜 집단으로는 강간하고는 그 모습을 찍은 사진을 아들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 등 인간이 이해할 수 없이 끔찍한 일들도 서슴지 않았다. 


이 지독한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몰락은 루마니아 서쪽의 도시 티미쇼아라에서 시작되었다. 1989년 12월, 티미쇼아라에서 인종간 갈등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헝가리계 목사 퇴케시 라슬로가 불합리하게 체포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라슬로의 체포에 저항하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일어나자 차우셰스쿠 정부는 군대와 헬리콥터, 탱크까지 동원해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며 다수의 시위대를 사살한다. 시민과 노동자들은 이 무력진압에 격렬히 반발하였으나 차우셰스쿠 정부는 개의치 않았다. 티미쇼아라에는 계엄령이 내려졌으며 성당에서 "깨어나라, 루마니아여!"라 노래하던 대학생 30명은 군대의 집중사격을 받고 몰살당한다. 이때 시위대와 군대의 충돌이 있었던 곳은 잔해와 불길, 핏자국으로 흡사 전쟁터와도 같은 모습이었다고 전해질 정도다. 하지만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차우셰스쿠의 폭정에 이를 갈던 사람들은 계속해서 티미쇼아라로 몰려들었고, 이 시점에서 시위대의 숫자는 이미 10만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차우셰스쿠는 이상한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다. 이미 몇 차례의 소요 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한 바 있는 그는 자신의 카리스마로 이 모든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그에게 제대로 된 보고가 들어가지 않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설도 있다). 12월 21일, 차우셰스쿠는 늘 하던 대로 수도의 광장에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들끓는 민심을 진정시키고 자신의 권위를 다시 한 번 확립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마지막 연설이 되었다. 


출처 Avocatul Poporului 유투브 채널


시간이 없다면 2분 30초부터 보자. 평소처럼 스스로를 추켜세우는 연설을 하는 차우셰스쿠. 처음에는 모든 것이 평소와 같다. 그러나 그는 곧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다. 그는 이제껏 자신이 살아있는 신이며 인민의 아버지라고 주창해왔다. 국민들을 탄압했으며 감시했고 자신이 그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누군가 야유를 하기 시작한다. 군중은 하나 둘씩 그 소리에 동참한다. '티미쇼아라!'를 연호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휘파람을 불고 미친듯이 소리를 지른다. 2분 41초,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는 차우셰스쿠의 얼굴을 보자. 간신히 한 손을 들고 "여러분(Hallo)"이라고 외쳐 보지만 이미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다. 바로 이 순간이다. 차우셰스쿠의 시대가 무너진 순간이자 루마니아 혁명이 이루어진 순간이 바로 저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금씩 조금씩 쌓여온 무언가가 마침내 역치에 도달해 둑을 터뜨리고 사방으로 질주하는, 역사의 흐름을 뒤바꾸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광경은 루마니아 전역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차우셰스쿠는 급히 자리를 피한다. 그러나 이미 그의 시대는 끝난 뒤였다. 시위를 진압하라고 정규군을 보내 보지만 이미 그의 명령을 따를 생각이 없는 군대는 오히려 시위대에 합류해 차우셰스쿠에게 총구를 겨눈다. 다음날인 22일 정오, 차우셰스쿠는 그의 아내 엘레나(역시 각종 악랄한 짓을 저지른 장본인이다. 각종 증언에 따르면 차우셰스쿠보다 더 잔인했다고도 한다)와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도주를 시도하나 헬리콥터 조종사조차도 헬리콥터를 비상착륙시킨 후 도망가버린다. 차우셰스쿠 부부는 몇 명의 경호원과 함께 시민들의 차를 빼앗아 타 가며 필사적으로 도망치지만 결국 23일,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혁명군에 붙잡히고 만다. 


그렇게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198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의 오후 4시에 총살당한다. 아내 엘레나와 함께였으며, 그의 마지막 연설로부터 불과 4일 후의 일이었다. 동구권 최악의 독재자는 그렇게 허무한 끝을 맞았다.


총살당하는 차우셰스쿠 부부. 사진출처 stillunfold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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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사람으로는 최초로 TED 메인 강연으로 소개된 김영하의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막 자신만의 어떤 창의를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더없는 위로이자 격려.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다.


2. 주요 포인트.


오늘 제가 얘기할 주제는요,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입니다. 

이런 얘기를 꺼내면 이제 보통 분들 다 긴장하고 약간 마음속에 저항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 예술이 밥 먹여주나, 그리고 지금 바쁜데 무슨 예술, 그 다음에 나는 학교도 가야 되고, 취직도 해야 되고...


지금 당장 우리가 예술가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수백 가지가 있습니다. 머리 속에서 막 떠오르죠?


제가 이렇게 미친듯이 글쓰기 수업을 시키는 이유는 

쓰면서 생각이 많아지면요, 우리 마음속에 예술가의 악마가 나타납니다. 


이 악마는 글을 쓸 수 없게 만드는 수백 가지 이유, 

니가 글을 쓸 수 없는 수백 가지 이유를 얘기하면서 

"남들이 너를 비웃을 거야. 이건 글이 아니야! 이게 문장이냐? 글씨를 봐라!"

뭐 여러가지 말들을 합니다. 


이 악마가 따라오지 못하게 빨리 달려야 되요.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가 될 수 없는 수백 가지의 이유가 아니라 

되야만 하는 자기만의 단 한가지 이유가 한 사람을 예술가로 만드는 거에요.

될 수 없는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요. 대부분의 예술가가 그렇게 해서 예술가가 된 겁니다.


자 이제 우리가 마음속의 악마를 잠재우고 자기 예술을 시작하려고 할 때, 

이제 적들이 바깥에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대부분 부모님의 얼굴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아요(웃음).

그 다음에 배우자의 얼굴을 하고 있을 때도 있지만,

그들은 여러분의 부모나 배우자가 아니에요. 악마에요(웃음).

잠시 변신해서 우리 지구에 내려와서 여러분의 예술가 행을, 

예술가가 되려는 걸 막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 분들에게는 마법의 질문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나 연극을 좀 해볼까봐, 뭐 구청에서 하는 연극 무슨 학교가 있던게 가볼까봐" 라든가

"이태리 가곡을 배울까봐" 그러면, 


"어 그래? 연극? 그거 해서 뭐할려고 그래?"

마법의 질문이에요. 

"그거 해서 뭐할려고 그래?"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런데, 예술이라는 것은 뭘 해서 뭘 하려는 게 아니죠. 

예술은 최종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을 구원하고 우리가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거에요.


그래서 이런 질문에 대해서, 이런 실용주의자들에 대해서 우리는 담대하게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 그냥 즐거워서 하는 거야. 재밌어서 하는 거야. 미안해, 나만 재밌어서."

"내가 좀 먼저 할께"

라고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야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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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도롱이벌레로 태어나고 싶다. 하루 종일 포근한 도롱이 안에 들어가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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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깽이
2017. 4. 23. 10:35 - 북북서


<wallpaperswide.com>




장담하는데 아깽이는 사람을 심정지에 이르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심지어 아깽이라는 단어조차도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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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스킨
2017. 4. 21. 23:13 - 북북서



<http://www.moleskine.com/kr/news/harrypotter>


해리포터 에디션이 역대급으로 잘 빠져서 살 생각에 한동안 행복했는데 포켓 사이즈는 안 나왔단다. 두 개가 나오면 당연히 하나는 라지, 하나는 포켓 사이즈일거라 넘겨짚은 안일함이 이렇게 원통할 수가 없다. 시발.


사실 생각해보면 몰스킨이야말로 이 시대 진정한 감-성이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부터 당당하게 고흐, 피카소, 헤밍웨이 등을 언급하고 있으나 사실 자세히 읽어보면 이들과 현재 생산되는 몰스킨의 직접적인 관계는 전혀 없다. 그저 고흐, 피카소, 헤밍웨이 등이 사용했던 수첩과 비슷한 디자인(사각형에 둥근 모서리, 늘어나는 밴드 등)을 차용해 그 노트의 후계자임을 선언할 뿐, 몇 백년의 역사를 가진 브랜드가 아니며 유럽의 장인이 제작하는 수첩은 더더욱 아니다(몰스킨의 제조공정은 중국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몰스킨이라고 하면 뭔가 아티스트적인 분위기가 항상 동반되니 이것은 감-성 마케팅의 승리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사실 말이 감성이지 교묘한 허위광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데, 몰스킨은 여기서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신의 한 수를 둔다. 각 매체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한정판을 내는 고전적이라면 고전적인 수법인데, 문제는 이게 위에서 보이듯 엄청 예쁘다. 그냥 예쁜 것도 아니고 애어른들의 지갑을 나꿔채기에 최적화된 예쁨이다. 콜라보레이션 대상 또한 허영만부터 코카콜라까지 도무지 뭐라 관통하는 일관성을 찾기가 힘들도록 다양하니 한 번 몰스킨 리미티드 에디션을 사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는 거다. 조금 과장인 것 같기도 한데 적어도 나는 못 멈췄고, 로디아가 좋네 종이 질은 클레르퐁텐이 최고네 소리를 들어도 이미 흔들리지 않는다. 지나친 애플 빠들을 앱등이라 부르던데 나는 나를 포함한 몰스킨 빠들도 절대 그에 못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근데 그러니까 제발 해리포터 에디션 포켓 사이즈로도 내주면 안될까. 제발. 진짜로. 현기증 난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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