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하자드 2 리메이크 (Resident Evil RE:2)
PS4, XBOX ONE, PC
사진출처 바이오하자드 2 리메이크 공홈
잘 만든 민트초코같은 게임이다.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겠지만 참고 들어주길 바란다. 그래도 나름대로 논-리가 있는 비유니까.
<바이오하자드 7>은 여러모로 이질적인 게임이었다. 사실적으로 바뀐 캐릭터 디자인, 기존의 세계관에서 거의 완전히 독립된 캐릭터와 스토리, 4편 이후로 확립된 쿼터뷰를 버리고 시리즈 최초로 도입한 1인칭 시점에... 무엇보다도 체술을 포함한 액션 컨텐츠의 대부분을 삭제하고 추구한 호러라는 방향성까지 모두 그랬다. 그 결과는 <바이오하자드>의 스킨을 씌운 <아웃라스트 3>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생경한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다행히도 캡콤의 이 과감한 선택은 성공했다. 4편 이후 최고의 메타크리틱 점수를 받았으며, 손익분기점도 넘겼다. 호러 게임으로서의 근-본을 되짚어나감으로서 시들어가는 <바이오하자드> 프랜차이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찬사가 각종 웹진과 리뷰어들의 주된 평가였다. 적어도 5편이나 6편보다는 뛰어난 게임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이때 판매량의 통계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이오하자드 5>는 1,200만 장을 넘게 팔아치웠다. 혹평을 받은 <바이오하자드 6> 역시 1,000만장을 넘겼다. 하지만 <바이오하자드 7>는 그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600만 장을 간신히 상회하는 데에 그쳤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답은 바로 장르에 있다. 호러는 게임 시장에서 그리 인기있는 장르가 아니다. 절대다수의 게이머들은 게임에서 정서적 스트레스를 받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종 매체에서 역대 게임들의 판매량을 한 번 찾아보시라. 상위권은 모조리 액션, 스포츠, FPS, 그리고 패밀리 게임의 차지이다. 발매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아웃라스트>의 대성공도 단순 판매량으로 보면 400만 장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시장의 협소함을 알 수 있다(1,500만장이 팔렸다는 루머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2016년 10월 제작사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400만 장이 맞다. 혹시 시리즈 전체 판매량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요컨대 호러는 매니아를 위한 장르라는 것이다. 아이스크림으로 비유하면 민트맛 아이스크림이다. 아무리 민트 본연의 향이 살아 있어도 먹는 사람만 먹는다. 반면 액션은 초코맛이다. 대충 초콜릿 맛만 난다면 누구나 잘 먹는다. <바이오하자드 7>은 오가닉 민트 아이스크림이었지만 <바이오하자드 5>와 <바이오하자드 6>는 무난한 초코 아이스크림이다. 그 퀄리티와는 별개로 잠재적 구매자의 풀 자체가 달랐던 거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대충 눈치채셨는가? 그렇다. <바이오하자드 2 리메이크>(이하 RE:2)는 그 두 가지를 섞었다. 7편의 호러 요소와 그래픽 컨셉은 그대로 유지하되 지난 시리즈의 시점과 액션성을 더했다. 우리는 이른바 민트초코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또다시 의문이 생긴다. 민트초코는 민트인가 초코인가? 붕어빵은 붕어가 아니라 빵이고 토마토파스타는 토마토가 아니라 파스타니까 민트초코는 초코인가? 큐티섹시 트와이스 사나는 큐티인가 섹시인가? 이 모든 고민에 해답은 있는가?
<RE:2>는 일단 여전히 호러의 테이스트를 간직하고 있다. 체술은 없고 구르기나 회피도 없다. 절대로 죽지 않는 적이 쫓아오는데 탄약은 항상 부족하다. 그래서 내내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모퉁이의 어둠을 보면 긴장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4편과 5편, 6편의 흥행을 이끌었던 액션성도 일정 부분 이식해 놓았다. 주인공들은 처음부터 총을 들고 시작한다. 샷건도 주고, 유탄도 주고, 쏴죽일 좀비와 괴물도 계속 기어나온다. 조준점을 유지하면 정밀 조준도 가능하고 좀비의 팔다리를 끊어놓는 전략적인 부위파괴도 구현되었으며, 어딘가 조금 부족했던 7편의 괴물들에 비해 훨씬 <바이오하자드>스러운 인카운터와 보스전 역시 잔뜩 준비되어 있다. 보이는 대로 다 쓸어버리는 식의 플레이는 불가능하지만(체술도 없고 나이프도 소모식이라 탄약이 바닥나면 싸울 수단이 아예 없다), 그래도 충분히 적과 맞서 싸우는 재미를 느낄 정도는 된다. 굳이 따지자면 쫓아오는 추격자를 피해 도망치는 전반부는 호러가 맞는 것 같고, 지하의 비밀 연구소로 내려가 보스들을 차례차례 격파하는 후반부는 본격적인 액션에 더 가깝다.
또 하나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RE:2>의 리메이크적 성격이다. 제작진은 오리지널 <바이오하자드 2>에서 모티브만 얻은 완전히 새로운 게임으로 봐달라고 하지만, <RE:2>는 과장 좀 보태서 리마스터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물론 시점이나 그래픽, 시스템의 완성도 등은 (당연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RE:2>는 그 당시 게임이 추구하는 감성의 대부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초반부 퍼즐은 문 하나를 열기 위해 똑같은 곳을 계속 지나다녀야 하는 반복적인 구조이고, 난이도 역시 다른 AAA 게임에 비해 확연히 높으며(심지어 이번 타이틀에서는 적응형 난이도가 적용되어 플레이어가 잘하면 잘할수록 난이도가 실시간으로 높아진다), 전체적인 조작감 역시 상당히 느릿하다. 이런 요소는 분명 양날의 검이다. 시리즈 고유의 팬들에게는 더할나위없는 선물이겠지만, 라이트 팬들 및 신규 유저들에게는 어느 정도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오리지널 <바이오하자드 2>가 아무리 명작이었다지만 이미 20년 전 게임이다. 그 당시이기 때문에 허용되었던 요소를 현대 AAA 타이틀에 도입하는 것은 좋게 말하면 근-본에 충실한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그저 시대착오적인 디자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물론 리메이크라는 태생이 단점만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따지자면 장점도 굉장히 크다고 하는 것이 공정하겠다. 새로운 때깔로 재창조된 고전 명작을 보는 것 자체도 즐겁고, 최신 게임과는 다른 감성이 묘하게 힙스터적 재미를 자극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건 바로 캐릭터들이다. <바이오하자드>는 일본식으로 살짝 과장된 캐릭터성을 빼놓을 수 없는 시리즈였다. 레온, 클레어, 크리스, 질 등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캐릭터들은 <바이오하자드>의 아이덴티티이자 여타 좀비 게임들은 가지지 못한 무기이기도 하다. <바이오하자드 7>은 이런 부분에서 많이 취약했다. 메인 스토리라인에서 동떨어진 외전인데다가 주인공의 캐릭터성이 살아남기 힘든 1인칭 시점의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바이오하자드 7> 주인공의 이름과 얼굴이 기억나는가? 목소리는? 아마 잘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반면 몇 년 만에 다시 만나는 레온과 에이다, 클레어는 마치 오랫만에 만난 동기들처럼 반갑고 게임에 쉽게 몰입하도록 도와주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는 아무리 명작이어도 역사가 짧은 게임들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오래된 프랜차이즈만이 가지는 힘이다.
앞서 말했듯 <바이오하자드 7>의 성공은 판매량이 뒷받침되지 않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비록 호러 게임으로서 비평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캡콤은 상업적인 지표를 포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RE:2>는 캡콤의 줄타기같은 느낌이 강하다. 민트와 초코, 호러와 액션, 비평적 성공과 상업적 흥행의 비율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게이머를, 시장을 조금씩 시험해보고 있다고 해도 좋겠다. 본격적인 사격 시스템을 넣었는데 어때? 무서워? 여기에서 회피랑 발차기를 넣어도 계속 무서워해 줄거야? 나이프를 무한 내구도로 만들면 시시할까? 어느 기둥을 세우고 어떤 지붕을 올려야 제일 멋진 게임이 될 것 같냐고, 캡콤은 <바이오하자드>를 낱낱이 분해한뒤 하나씩 재구축하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유의미하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RE:2>는 <바이오하자드 7>보다 손맛이 좋고, <바이오하자드 6>보다 훨씬 무섭다. 어설픈 혼합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함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RE:2>는 다행히 트위너의 함정을 피해가는 데에 성공한다. 민트초코인지 초코민트인지, 살짝 헷갈릴 정도로 잘 배합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맛있다. 캡콤의 다음 질문은 <바이오하자드 3>의 리메이크일까, 아니면 <바이오하자드 8>일까? 어느 쪽이든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생상해 보시라. 차세대 엔진으로 스타-즈를 외치는 네메시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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