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큐 디자인이 적용된 ASUS 제피러스. 사진출처 techradar.com.
성능과 휴대성의 트레이드오프는 오랫동안 게이밍 노트북 업계의 난제였습니다. 높은 성능은 필연적으로 무지막지한 전력 소모와 그에 따른 높은 발열을 동반합니다. 이 발열을 완벽히 해소하려면 쿨러와 히트 파이프 등 부가적인 부품과 공간이 많이 필요한데, 이러면 당연히 노트북이 엄청나게 커지죠. 가지고 다닐 수 없는 노트북은 사실 동급의 데스크탑과 비교했을 때 메리트가 거의 없죠. 특히 가격이 거의 두 배가 차이가 나는데요. 하지만 그렇다고 발열 해소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30분도 채 되지 않아 쓰로틀링이 걸려 버리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게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게이밍 노트북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서 게이밍 노트북 제조사들은 항상 성능과 휴대성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해왔습니다. 분명 게이밍 노트북이라는 제품군에 대한 수요는 있는데, 이를 만족시키기가 까다로운 거죠. 비록 엔비디아에서 파스칼 아키텍쳐를 내놓으며 게이밍 노트북에 일대 혁명이 일어나긴 했지만, 이 성능과 휴대성의 근본적인 이율배반은 여전합니다. 사실 열역학이 준거하는 한 완전히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조사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습니다. 2017년 9월 현재, 성능과 휴대성 두 가지 사이의 최적의 밸런스를 잡아내려는 두 가지 시도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바로 eGPU와 맥스 큐 디자인이 그것입니다.
1. eGPU
레이저 코어. 사진 출처 Laptop Mag
첫번째는 eGPU입니다. External GPU의 약자로, 번역하자면 외장 그래픽카드가 되겠으나 그렇게 지칭할 시 CPU 내장 그래픽카드(인텔 아이리스 등)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그래픽카드와 혼동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주로 eGPU라고 불립니다. 말 그대로 그래픽 카드 동작만을 위한 별도의 시스템(작은 NAS 케이스를 연상하시면 되겠습니다)을 구축한 뒤 노트북에 연결하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래픽 카드의 전력 소모와 발열을 완전히 분리된 장치가 해결해 주기 때문에 노트북 자체는 전혀 그 부분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죠.
사실 이런 식으로 그래픽카드를 노트북 밖으로 빼는 시도는 상당히 예전부터 있어오긴 했습니다. 주로 그래픽 작업을 하는 맥북 사용자들에 의해서였는데요, 대개의 경우 USB를 비롯한 포트 대역폭의 한계로 그리 효율적인 결과를 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더 넓은 대역폭의 연결들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게이밍 노트북 제조사가 이 eGPU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최초의 사례는 아마도 에일리언 웨어의 그래픽 앰프(Graphics Amplifier)였을 겁니다.
에일리언웨어 그래픽 앰프. 사진 출처 PCWorld.
이렇게 생겼습니다. PCI-E 단자를 이용해 노트북과 연결되는 것이 특징이죠. 그래서 에일리언 웨어의 게이밍 노트북은 모두 뒷면에 PCI-E 포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조금 뒤에 발표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은 레이저의 코어는 썬더볼트 3 단자를 이용합니다. 이론상 썬더볼트 3의 대역폭은 40gb/s입니다. 반면 PCI-E는 무려 128gb/s의 대역폭을 가지죠. 그럼 에일리언 웨어가 훨씬 좋은 거 아닌가, 싶지만 사실 에일리언 웨어의 그래픽 앰프는 32gb/s의 대역폭 제한이 걸려 있습니다. 아무리 현세대 그래픽카드라도 저렇게나 넓은 대역폭까지는 필요가 없으니까요. 다음 세대 아키텍쳐인 볼타가 나와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아마 당분간은 저정도의 대역폭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레이저 코어가 한바탕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후 현재 eGPU 박스의 표준은 썬더볼트 3입니다. 국내에서는 한성이 들여온 아키티오 노드가 유명하죠. 노트북 제조사는 아니지만 해외의 바이즌(Bizon) 역시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이 eGPU의 장점은 썬더볼트 3 포트만 있다면 사실상 모든 노트북에 연결이 가능하며(하지만 USB-C 포트라고 다 썬더볼트 3 포트는 아니므로 주의를 요합니다) 노트북 그래픽카드 발열에 대한 거의 완벽한 대책이라는 점입니다. 평소에는 가볍게 들고 다니다가 집에 와서 eGPU를 연결한 후 게임을 구동하는 것이 가능해지니 말입니다. 게이밍 노트북이 아니라 그냥 일반 노트북이라도 전혀 상관이 없죠. 그런 경우에는 아무래도 저전력 CPU가 조금 발목을 잡긴 하겠습니다만.
단점이라면 역시 가격이 있겠습니다. 아키티오 노드는 현재 30만 원 대, 레이저 코어는 499달러니까 거의 60만 원을 호가합니다. 여기에 그래픽카드는 따로 사야 하니 사실상 70 ~ 80만 원 이상이 드는 것이죠. 게다가 성능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에요. 그래픽카드를 밖으로 뺀다는 특성 상 현재까지는 같은 카드를 넣은 데스크탑과 비교했을 때 10~15% 정도의 성능 저하가 일어납니다. 여기서 만약 외장 모니터가 아니라 노트북 자체 모니터로 데이터를 루프 백 한다면 10~15%의 손실이 더 일어나죠. 여러모로 아직 완전한 기술은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가 되는 분야인 것은 확실합니다.
2. 맥스 큐(Max-Q)
맥스 큐 디자인이 적용된 ASUS 제피러스. 사진출처 techradar.com.
맥스 큐(Max-Q)는 세계 최고의 그래픽카드 제조사 엔비디아에서 발표한 새로운 "디자인"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기술이 아니라 디자인이라는 것입니다. 맥스 큐는 새롭거나 진보된 기술이 아니라 노트북 그래픽카드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 가깝습니다. 본래 맥스 큐란 항공우주공학에서 쓰는 용어로 공기역학적 압력이 가장 강한 지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노트북 그래픽 카드의 소모 전력 대비 퍼포먼스 그래프 중 최적의 밸런스를 가진 지점을 의미합니다. 그 그래프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사진출처 LaptopMag
그래프를 보면 소모 전력이 늘어날수록 그래픽 카드의 퍼포먼스 또한 증가합니다. 하지만 표시된 부분, 저 정점을 지나면 소모 전력 대비 퍼포먼스의 상승률이 급격히 낮아져요. 저 지점을 지나면 성능의 증가가 너무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맥스 큐 디자인은 바로 그래픽카드를 언더클럭해 딱 저 부분에서 구동하게 만드는 디자인입니다. 자연히 퍼포먼스 자체는 떨어집니다. 하지만 소모 전력과 그로 인한 발열, 그리고 그 발열을 해소하기 위한 팬의 소음까지 획기적으로 줄어들죠. 기존의 노트북용 GTX 1080의 파스 점수는 약 21K 정도입니다. 반면 맥스 큐 디자인이 적용된 GTX 1080은 약 18K에요. 3,000점 정도의 차이가 나는 셈입니다. 하지만 TDP는 165W에서 100W로 현격하게 감소합니다. 이는 그만큼 배터리가 오래 간다는 뜻이며 발열이 적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발열이 훨씬 적기 때문에 노트북이 작고 얇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진출처 LaptopMag
GTX 880m이 장착된 노트북과 맥스 큐 디자인이 적용된 GTX 1080 노트북의 차이입니다. 물론 엔비디아 자체 자료라 조금 과장이 섞여있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사실 아키텍쳐가 두 세대나 차이가 나는데 그렇게 유의미한 비교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두께가 3분의 1, 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든 사실은 놀랍습니다. 이 맥스 큐 디자인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린 노트북은 위에도 두 번 등장한 아수스의 제피러스입니다. GTX 1080을 달고 있으면서도 18mm의 놀라운 두께를 자랑하죠(맥북 프로가 15mm인데!). 이는 게이밍 노트북의 휴대성에 있어 크나큰 변혁이며 실로 희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단점은 있습니다. 아수스를 비롯해 MSI, AORUS, 에일리언웨어 등의 제조사들이 맥스 큐 디자인의 노트북을 내놓고 있지만 그 가짓수가 많지 않으며 대부분이 GTX 1070, 1080를 사용하고 있어요. GTX 1060의 경우 맥스 큐 디자인이 1070이나 1080처럼 다이나믹한 효과를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이죠. 일반 노트북용 GTX 1060의 TDP는 80W인데 반해 맥스 큐 GTX 1060의 TDP는 60~70W입니다. 분명 유의미한 변화이나 1070이나 1080만큼 큰 차이는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대부분의 맥스 큐 노트북들은 가격대가 상당합니다. 2,000달러 이상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아직 나온 지 반 년도 채 되지 않은 디자인이기 때문에 조금 더 기다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게이밍 노트북은 사실 다소 어중간한 입지의 제품군입니다. 휴대성으로는 일반 노트북에 뒤떨어지고, 성능으로는 데스크탑에 비빌 수가 없죠. 이는 사실 태생적인 한계와도 같습니다. "게이밍"과 "노트북"은 사실 그다지 어울리는 조합이 전혀 아니니까요. 하지만 어떻게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게이밍 시스템을 만드려는 이들은 언제나 존재해 왔습니다. eGPU와 맥스 큐는 그런 게이밍 노트북들의 한계를 한 단계 더 넓히려는 시도입니다.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분명 각자의 장점이 뚜렷한 매력적인 시도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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