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 1978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에 개발자들은 혹시라도 게이머들이 너무 심한 죄책감에 게임을 끄는 일이 없도록 심리적 방어막을 준비합니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문득 느낀 적이 있을 거에요. 일종의 마취 주사인데, 바로 적에게서 플레이어가 적에게 감정을 이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이 작업은 주로 적을 아무 도덕적 딜레마 없이 죽여도 좋은 명분과 상황을 조성해줌으로서 이루어집니다. 게임에서 우리가 쏘아 죽이는 적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나쁜 놈들입니다. 하나같이 흉악한 음모를 꾸미거나 그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어요. 세상을 구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선 저들을 죽여야 합니다. 플레이어는 선하고 정의로운데, 적은 악한데다 오히려 플레이어를 공격합니다. 그러면 어쩔 수 있나요, 쏴야죠. 적이 인간이 아닐 경우 이 작업은 한결 더 쉽습니다. 제아무리 공감능력이 투철한 사람이어도 자신을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끔찍한 좀비와 괴물들에게 이입하기는 어려우니까요.
두 가지가 다 합쳐진 좋은 예로는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에 꾸준히 등장하는 나치 좀비들이 있겠습니다. 얘네는 인류 역사상 몇 안되는 공통된 절대악인 나치 나쁜놈들인데 세상에, 거기에다가 좀비이기까지 해요. 얼마든지 마음놓고 쏴도 되는 좋은 표적인 셈이죠. 이입할 수 없으니, 죄책감도 없습니다.
반대로 이런 심리적 방어막 없이 플레이어가 죄책감에 그대로 노출된 예로는 그 유명한 <노 러시안> 미션이 있습니다. 2009년,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2>는 그 뛰어난 게임성만큼이나 격렬한 논란을 불러왔어요. 초반부 <노 러시안(No Russian)>이라는 이름의 미션이 문제였죠. 미션은 공항 엘리베이터에서 시작합니다. 플레이어의 양 옆에는 검은 옷을 입은 팀원들이 있습니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팀원들은 공항에 가득 찬 민간인들을 기관총으로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 2(Call of Duty : Modern Warfare 2)>, 2009
사진출처 MTU DGE 유투브
그간 게임산업에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아무 죄도 없고 저항하지도 않는 민간인들을, 그것도 이렇게 대량으로 학살하는 것이 미션의 임무였던 적은 없었어요. 당연히 큰 논란을 불러오게 되었죠. 비록 제작진이 이 미션을 스킵하는 옵션을 만들어두긴 했지만 결국 일본과 독일을 포함한 일부 국가에서는 <노 러시안> 미션 동안 플레이어는 총을 쏠 수 없도록 하는 스크립트를 삽입했고, 러시아는 콘솔판 전량 회수, PC판은 미션 자체를 삭제해버리는 조치를 내립니다.
하지만 이 <노 러시안>의 섬뜩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반전이 하나 있으니, 사실 <노 러시안>을 플레이하면서 민간인을 쏴죽이지 않아도 게임은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걸리지만 결국 팀원들이 민간인들을 다 살해하기 때문이에요. 결과는 같지만 적어도 플레이어가 직접 민간인을 죽일 필요는 전혀 없었던 거죠. 즉, "어떻게 이런 짓을 하지?"하며 이 학살에 동참하지 않아도 미션은 알아서 진행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제작사 인피니티 워드 측에서 밝힌 자료에 의하면, 베타 테스트 당시 10명 중 단 1명만이 이 미션에서 민간인에게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고 해요. 10명 중 단 1명 말입니다. 아마 이 미션을 플레이하게 된 일반 게이머들도 그리 다르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현실이었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할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90%의 플레이어는 여기서 죄없는 민간인에게 총을 쏘았습니다.
왜? 의견은 분분합니다. 미션이라서. 해야 하는 줄 알고, 그냥... 그러나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게임이라서, 일 겁니다. 게임은 습관화된 폭력이 용인되는 공간이고, 진짜가 아니므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죄가 되지 않는 곳이니까요. 하지만 그저 그것뿐일까요?
<스펙 옵스 : 더 라인>, 사진출처 스팀
<스펙 옵스 : 더 라인>은 바로 이 습관화된 폭력에 의문을 던지는 게임입니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로 만들어지기도 한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를 원작으로 두고 있죠. 시작은 여타 슈팅 게임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래폭풍이 불어닥친 두바이, 주인공 워커 대위는 모래폭풍에 고립되어버린 존 콘라드 대령과 그가 지휘하는 33대대를 구출하기 위해 투입됩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두바이는 처참하게 망가져 있고 33대대는 이해할 수 없는 짓을 벌이고 있어요. 워커 대위는 알 수 없는 무전기 하나에 의지해 이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 콘라드 대령을 찾으려 합니다. 그의 앞에 어떤 광기와 지옥도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말입니다.
게임은 처절한 망가짐의 플롯입니다. 진실은 모호하고 진위는 의심스럽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플레이어는 더더욱 가혹한 상황에 몰려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옳은 것 같았던 행동은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고, 그 결과는 또다른, 그리고 점점 더 가파른 지옥으로 워커 대위를 인도해요. 그리고 이는 중반부 워커 대위가 수십명의 민간인을 산 채로 태워죽이게 되면서 절정에 달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밝혀지는 진상은... 워커에겐 거의 고문과도 같은 무언가입니다. 언급해두자면 이 게임이 18세 이용가인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잔인하기도 하거니와 정신적으로 몰리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에요. 외국 웹에선 이 게임을 PTSD 시뮬레이터라고 부르기까지 하더군요.
영웅이자 구원자로서 파견된 워커 대위가 모래폭풍을 허우적거리며 점차 살인자로 추락해가는 동안, 게임의 모든 요소가 그에 따라 변화합니다. 처음에 서로 농담을 건네기도 하며 밝은 모습을 보이던 분대원들은 점차 잔혹하고 폭력적인 성격으로 변해갑니다. 적을 죽이게 되면 초반에는 "적이 무력화되었다(Target neutralized)"고 하던 것이, 중반에는 "죽었어(He's dead)"로, 그리고 후반에 접어들면 "이 씨발새끼(Son of a bitch!)"로 바뀌는 식입니다. 각종 전투 모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쓰러진 적에게 다가가 확인사살 커맨드를 입력하면 머리에 한 발을 쏘던 워커 대위는 후반에 접어들면 거친 욕을 토해내며 목을 밟아 분질러 버리며, 다리에 먼저 한 발을 쏜 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머리를 쏘기도 해요. 잔혹한 경험으로 피폐해진 그의 인격을 드러내는 연출이자, 미국식 영웅주의에 대한 훌륭한 냉소에요. 하지만 게임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스펙 옵스 : 더 라인>의 로딩 화면은 언뜻 평범합니다. 다른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플레이 팁과 조작법을 알려주는 정도죠. 하지만 게임이 진행되며 어느 순간이 지나면 로딩 화면의 문구가 묘하게 바뀝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화면을 넘어 플레이어를 비난하기 시작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이건 모두 당신 잘못입니다
This is all your fault.
스스로를 위해 죽이는 것은 살인입니다. 국가를 위해 죽이는 것은 영웅적입니다. 재미를 위해 죽이는 것은 무해합니다
To kill for yourself is murder. To kill for your government is heroic. To kill for entertainment is harmless.
미군은 비무장 전투원을 사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현실도 아닌데, 당신이 신경써야 합니까?
The US military does not condone the killing of unarmed combatants. But this isn't real, so why should you care?
이 메시지들은 전쟁, 살인, 폭력의 현실성에 무감각해져 그저 게임의 요소로만 여겼던 플레이어에게 들이붓는 찬물과도 같습니다. 이 메시지들을 읽는 순간 플레이어는 깨닫게 됩니다. 워커 대위가 내린 결정, 워커 대위가 죽인 사람들은 사실 플레이어 자신이 내린 결정이고 자신이 저지른 살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는 게임 내에서 워커 대위가 "뜻하지 않게",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살인과 훌륭한 아날로지를 형성하며 플레이어를 비웃습니다. 봐, 너랑 뭐가 달라? 플레이어와 워커 대위 사이의 감정적 간격은 줄어들고, 어느 순간 플레이어는 폭력의 주체로서 자신이 저지른 참상을 응시하게 됩니다.
물론 게임 내의 살인이 죄라는 말은 아닙니다. 어떻게 죄일 수가 있겠어요? 하지만 이를 단순한 오락적 요소, 전쟁 영웅 이야기의 부품으로 가공해 즐기는 태도가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겠습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를 다루는 <스펙 옵스 : 더 라인>의 화법입니다. 이는 오직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가능한 메타픽션이에요. 영화나 책에서 관객은 말 그대로 순수한 관객이죠. 관객과 독자가 무슨 짓을 하건 영화나 책 자체에 어떤 영향을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달라요. 플레이어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자 동시에 게임의 상호작용을 진행하는 주체잖아요. 게임의 주인공은 플레이어의 통제를 받는 존재이며 그의 분신이죠. <스펙 옵스 : 더 라인>은 게임의 이런 특성, 즉 사람과 매체 사이의 거리가 굉장히 가깝다는 점을 훌륭하게 활용해냄으로서 게임이 다른 형태 못지않은 예술의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해냈습니다.
<스펙 옵스 : 더 라인>, 사진출처 스팀
<스펙 옵스 : 더 라인>, 사진출처 디스이즈게임
추천
헤비한 게임을 해보고 싶으신 분
멘탈이 빠개지는 느낌을 좋아하시는 분
게임의 가능성을 엿보고 싶으신 분
비추천
게임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으신 분
때려부수고 재밌는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
쉬운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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