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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컨택트(Arrival) 2017.02.07
컨택트(Arrival)
2017. 2. 7. 01:47 - 북북서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5570)



(스포일러 가득가득)



<컨택트>는 시간여행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바꾸는 여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정확히는, 보여줄 수 없다. <컨택트>의 시간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동안 너무도 익숙히 봐왔던 선형적 시간여행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선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를 몇 개 떠올려보자. 이 분야의 전설인 <백 투더 퓨처>부터 시작해서 <이터널 선샤인>, <소스 코드>, <어바웃 타임>, <터미네이터>, <해리 포터> 그리고 <인터스텔라>에 이르기까지, 시간여행 서사의 핵심은 현재를 수정하기 위해 행하는 과거로의 회귀이다. 과거를 수정하면 현재가 바뀌고, 주인공은 나아가 원하는 미래를 거머쥐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현재에서 미래로의 인과율이 오직 한 가지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이 선형적인 방향성을 우리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컨택트>에는 이 시간의 선형성이 절대적이지 않다. 인과라는 개념 자체는 존재하지만 그 방향 역시 절대적이지 않다. 중간에 잠시 언급되는 페르마의 원리를 떠올려 보자. 빛은 경로를 정하고 그 선택의 결과로 목적지에 닿지 않는다. 반대로, 목적지를 미리 인지한 채 최적의 경로를 탐색한다.  <컨택트>의 과거는 현재의 유일한 기반이 아니며 현재 역시 미래의 유일한 씨앗이 아니다. 다만 이때 평행 우주와 헷갈려선 안 된다. 평행 우주는 시간축과 인과율이 조금씩 엇나간 무수히 많은 세계를 상정한다. <컨택트>의 우주는 단 하나이다. 그러나 그 우주는 한 가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컨택트>에는 이 시간의 비선형성이 다양한 상징으로 나타난다. 이 시간의 본질을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헵타포드의 언어는 원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인간의 글자처럼 오른쪽, 왼쪽, 위, 아래 어느 한 가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원은 균질하고 처음과 끝이 없으며 그 자체로 무한히 순환한다. 또한, 이 언어에는 시제가 없다. 헵타포드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현재이다. 코스텔로가 루이즈에게 "애봇 죽음(Abbot is death)"가 아닌 "애봇 죽음의 과정에(Abbot is death process)"라고 하는 이유다. 그리고 후반부 이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이 시간을 인지할 수 있게 된 루이즈는 딸의 이름을 해나(Hannah)라고 짓는다. 영화에서 직접 언급하듯 이 이름은 회문이다. 앞으로 읽던, 뒤로 읽던 같다. 역시 한 가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영화엔 묘사되지 않지만 원작 소설에선 헵타포드의 외형 역시 "일곱 방향으로 눈이 달려 모든 방향이 전방"이라고 노골적인 암시까지 던진다)


이 비선형성을 인지하게 된 루이즈에게 미래는 과거의 기억이며, 현재의 순간이자 동시에 예지의 대상이다. 바로 이 점이 <컨택트>가 여타 다른 시간여행 영화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루이즈는 시간을 여행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녀는 모든 순간을 산다. 그녀는 미래에서 답을 얻어 현재를 진행하며, 동시에 과거의 자신을 위해 현재에서 질문을 던진다(<인터스텔라>의 테서렉트를 설계하고 시간을 하나의 도구로써 다룰 수 있게 된 먼 미래의 인류 정도가 루이즈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때 착각해서는 안 되는 점은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는 물리적인 흐름 자체는 건재하다는 것이다. 헵타포드의 언어가 주는 권능은 단순한 인지능력일 뿐 루이즈라는 존재 자체가 시간을 초월할 수는 없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루이즈의 딜레마가 태동한다. 해나의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루이즈는 해나의 죽음을 알고 있다. 이미 겪었으며 지금도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을 것이다. 해결책은 있다. 만약 이안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않으면, 않는다면 해나는 태어나지 않는다(이 영화가 결정론적인 영화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컨택트>의 세계관에는 어느 정도 자유 의지가 끼어들 여지가 남아 있다고 밝혔다. 루이즈가 이안에게 만약 미래를 알고 있다면 그것을 바꿀 건지 물어보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만약 모든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그런 질문을 던질 이유가 없다). 그리고 루이즈는 선택한다. 해나는 태어났고, 태어나며, 태어날 것이다. 


루이즈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선 다시 이 권능의 원천이자 상징인 헵타포드의 문자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 헵타포드의 문자는 원의 형상을 띄고 있다. 하지만 모든 부분이 매끄러운 원은 아니다. 원의 군데군데에 복잡한 문양과 패턴이 들어가 있으며, 그 모양 덕분에 원은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루이즈에겐 분명 해나를 낳지 않는 선택지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낳더라도 어떻게 치료해보려 노력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루이즈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모든 순간을 동시에 인지하게 된 그녀에게 해나의 죽음은 미래이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하며 영원한 현재이다. 그녀의 삶이다. 그녀에게 해나의 죽음을 지우려는 시도는 자신의 현재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나의 문자가 자신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것이 그것만의 모양을 가지기 때문이다. 튀어나오고 움푹 패인 부분 하나 하나가 모여 의미를 이루고, 이 작은 차이들의 집합이야말로 처음도 끝도 없이 순환하는 원들에게 개별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차이이다. 요철과 질곡을 아주 조금이라도 깎아낸 문자가 더 이상 같은 문자가 아니듯,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깎아낸 삶 역시 삶은 아닐 것이다.



(https://www.rockym93.net/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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