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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하자드 2 리메이크 (Resident Evil RE:2)


PS4, XBOX ONE, PC


사진출처 바이오하자드 2 리메이크 공홈


잘 만든 민트초코같은 게임이다.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겠지만 참고 들어주길 바란다. 그래도 나름대로 논-리가 있는 비유니까. 


<바이오하자드 7>은 여러모로 이질적인 게임이었다. 사실적으로 바뀐 캐릭터 디자인, 기존의 세계관에서 거의 완전히 독립된 캐릭터와 스토리, 4편 이후로 확립된 쿼터뷰를 버리고 시리즈 최초로 도입한 1인칭 시점에... 무엇보다도 체술을 포함한 액션 컨텐츠의 대부분을 삭제하고 추구한 호러라는 방향성까지 모두 그랬다. 그 결과는 <바이오하자드>의 스킨을 씌운 <아웃라스트 3>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생경한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다행히도 캡콤의 이 과감한 선택은 성공했다. 4편 이후 최고의 메타크리틱 점수를 받았으며, 손익분기점도 넘겼다. 호러 게임으로서의 근-본을 되짚어나감으로서 시들어가는 <바이오하자드> 프랜차이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찬사가 각종 웹진과 리뷰어들의 주된 평가였다. 적어도 5편이나 6편보다는 뛰어난 게임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이때 판매량의 통계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이오하자드 5>는 1,200만 장을 넘게 팔아치웠다. 혹평을 받은 <바이오하자드 6> 역시 1,000만장을 넘겼다. 하지만 <바이오하자드 7>는 그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600만 장을 간신히 상회하는 데에 그쳤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답은 바로 장르에 있다. 호러는 게임 시장에서 그리 인기있는 장르가 아니다. 절대다수의 게이머들은 게임에서 정서적 스트레스를 받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종 매체에서 역대 게임들의 판매량을 한 번 찾아보시라. 상위권은 모조리 액션, 스포츠, FPS, 그리고 패밀리 게임의 차지이다. 발매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아웃라스트>의 대성공도 단순 판매량으로 보면 400만 장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시장의 협소함을 알 수 있다(1,500만장이 팔렸다는 루머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2016년 10월 제작사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400만 장이 맞다. 혹시 시리즈 전체 판매량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요컨대 호러는 매니아를 위한 장르라는 것이다. 아이스크림으로 비유하면 민트맛 아이스크림이다. 아무리 민트 본연의 향이 살아 있어도 먹는 사람만 먹는다. 반면 액션은 초코맛이다. 대충 초콜릿 맛만 난다면 누구나 잘 먹는다. <바이오하자드 7>은 오가닉 민트 아이스크림이었지만 <바이오하자드 5>와 <바이오하자드 6>는 무난한 초코 아이스크림이다. 그 퀄리티와는 별개로 잠재적 구매자의 풀 자체가 달랐던 거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대충 눈치채셨는가? 그렇다. <바이오하자드 2 리메이크>(이하 RE:2)는 그 두 가지를 섞었다. 7편의 호러 요소와 그래픽 컨셉은 그대로 유지하되 지난 시리즈의 시점과 액션성을 더했다. 우리는 이른바 민트초코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또다시 의문이 생긴다. 민트초코는 민트인가 초코인가? 붕어빵은 붕어가 아니라 빵이고 토마토파스타는 토마토가 아니라 파스타니까 민트초코는 초코인가? 큐티섹시 트와이스 사나는 큐티인가 섹시인가? 이 모든 고민에 해답은 있는가?


<RE:2>는 일단 여전히 호러의 테이스트를 간직하고 있다. 체술은 없고 구르기나 회피도 없다. 절대로 죽지 않는 적이 쫓아오는데 탄약은 항상 부족하다. 그래서 내내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모퉁이의 어둠을 보면 긴장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4편과 5편, 6편의 흥행을 이끌었던 액션성도 일정 부분 이식해 놓았다. 주인공들은 처음부터 총을 들고 시작한다. 샷건도 주고, 유탄도 주고, 쏴죽일 좀비와 괴물도 계속 기어나온다. 조준점을 유지하면 정밀 조준도 가능하고 좀비의 팔다리를 끊어놓는 전략적인 부위파괴도 구현되었으며, 어딘가 조금 부족했던 7편의 괴물들에 비해 훨씬 <바이오하자드>스러운 인카운터와 보스전 역시 잔뜩 준비되어 있다. 보이는 대로 다 쓸어버리는 식의 플레이는 불가능하지만(체술도 없고 나이프도 소모식이라 탄약이 바닥나면 싸울 수단이 아예 없다), 그래도 충분히 적과 맞서 싸우는 재미를 느낄 정도는 된다. 굳이 따지자면 쫓아오는 추격자를 피해 도망치는 전반부는 호러가 맞는 것 같고, 지하의 비밀 연구소로 내려가 보스들을 차례차례 격파하는 후반부는 본격적인 액션에 더 가깝다. 


또 하나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RE:2>의 리메이크적 성격이다. 제작진은 오리지널 <바이오하자드 2>에서 모티브만 얻은 완전히 새로운 게임으로 봐달라고 하지만, <RE:2>는 과장 좀 보태서 리마스터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물론 시점이나 그래픽, 시스템의 완성도 등은 (당연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RE:2>는 그 당시 게임이 추구하는 감성의 대부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초반부 퍼즐은 문 하나를 열기 위해 똑같은 곳을 계속 지나다녀야 하는 반복적인 구조이고, 난이도 역시 다른 AAA 게임에 비해 확연히 높으며(심지어 이번 타이틀에서는 적응형 난이도가 적용되어 플레이어가 잘하면 잘할수록 난이도가 실시간으로 높아진다), 전체적인 조작감 역시 상당히 느릿하다. 이런 요소는 분명 양날의 검이다. 시리즈 고유의 팬들에게는 더할나위없는 선물이겠지만, 라이트 팬들 및 신규 유저들에게는 어느 정도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오리지널 <바이오하자드 2>가 아무리 명작이었다지만 이미 20년 전 게임이다. 그 당시이기 때문에 허용되었던 요소를 현대 AAA 타이틀에 도입하는 것은 좋게 말하면 근-본에 충실한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그저 시대착오적인 디자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물론 리메이크라는 태생이 단점만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따지자면 장점도 굉장히 크다고 하는 것이 공정하겠다. 새로운 때깔로 재창조된 고전 명작을 보는 것 자체도 즐겁고, 최신 게임과는 다른 감성이 묘하게 힙스터적 재미를 자극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건 바로 캐릭터들이다. <바이오하자드>는 일본식으로 살짝 과장된 캐릭터성을 빼놓을 수 없는 시리즈였다. 레온, 클레어, 크리스, 질 등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캐릭터들은 <바이오하자드>의 아이덴티티이자 여타 좀비 게임들은 가지지 못한 무기이기도 하다. <바이오하자드 7>은 이런 부분에서 많이 취약했다. 메인 스토리라인에서 동떨어진 외전인데다가 주인공의 캐릭터성이 살아남기 힘든 1인칭 시점의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바이오하자드 7> 주인공의 이름과 얼굴이 기억나는가? 목소리는? 아마 잘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반면 몇 년 만에 다시 만나는 레온과 에이다, 클레어는 마치 오랫만에 만난 동기들처럼 반갑고 게임에 쉽게 몰입하도록 도와주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는 아무리 명작이어도 역사가 짧은 게임들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오래된 프랜차이즈만이 가지는 힘이다.



앞서 말했듯 <바이오하자드 7>의 성공은 판매량이 뒷받침되지 않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비록 호러 게임으로서 비평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캡콤은 상업적인 지표를 포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RE:2>는 캡콤의 줄타기같은 느낌이 강하다. 민트와 초코, 호러와 액션, 비평적 성공과 상업적 흥행의 비율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게이머를, 시장을 조금씩 시험해보고 있다고 해도 좋겠다. 본격적인 사격 시스템을 넣었는데 어때? 무서워? 여기에서 회피랑 발차기를 넣어도 계속 무서워해 줄거야? 나이프를 무한 내구도로 만들면 시시할까? 어느 기둥을 세우고 어떤 지붕을 올려야 제일 멋진 게임이 될 것 같냐고, 캡콤은 <바이오하자드>를 낱낱이 분해한뒤 하나씩 재구축하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유의미하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RE:2>는 <바이오하자드 7>보다 손맛이 좋고, <바이오하자드 6>보다 훨씬 무섭다. 어설픈 혼합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함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RE:2>는 다행히 트위너의 함정을 피해가는 데에 성공한다. 민트초코인지 초코민트인지, 살짝 헷갈릴 정도로 잘 배합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맛있다. 캡콤의 다음 질문은 <바이오하자드 3>의 리메이크일까, 아니면 <바이오하자드 8>일까? 어느 쪽이든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생상해 보시라. 차세대 엔진으로 스타-즈를 외치는 네메시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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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Marvel's Spider-man, PS4 독점)


사진출처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의외의 사실 하나. 마블 코믹스의 그 수많은 히어로 중 가장 인기가 많은 히어로는 단연 스파이더맨이다. 아이언맨이건 캡틴 아메리카건 상대가 되지 않는다. 각종 캐릭터 상품과 굿즈의 판매량만 보아도 그렇다. 스파이더맨은 아메리칸 코믹스 히어로를 통틀어서도 가장 많은 수익을 내는 캐릭터이며, <어벤져스>가 한꺼번에 덤벼도 스파이더맨 하나의 전 세계 굿즈 판매량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니 마블이 해체 위기에 놓였을 때 스파이더맨의 영화화 판권을 낼름 집어온 소니의 혜안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샘 레이미의 탄탄한 3부작부터 발랄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까지 매번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는 스파이더맨의 위력을 보고 있자면 잘 만든 허구, 매력적인 캐릭터 하나의 힘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스파이더맨도 비교적 힘을 쓰지 못하는 분야가 있었다. 바로 게임이다. 이제껏 스파이더맨의 이름을 달고 나온 수많은 게임들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많이 구렸다. <스파이더맨>(2000)이나<스파이더맨 2>(2004), <스파이더맨: 웹 오브 쉐도우즈>(2008) 등 그중 나름대로 괜찮은 타이틀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마저도 결국 매니아들을 위한 게임에 지나지 못했다. 하지만 작년 말 출시된 게임 <마블의 스파이더맨>(이하 스파이더맨)은 다르다. 스파이더맨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없더라도 재밌다. 심지어 2018년의 웬만한 게임보다 훨씬 낫기까지 하다.



가장 먼저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웹 스윙의 빼어남이다. <스파이더맨>의 웹 스윙은 거의 압도적이기까지 한 경험이다. 웹 스윙은 <스파이더맨2>에서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는 틀렸다. PS4의 성능으로 연산된 뉴욕은 생동감으로 가득 차있고, 사운드와 모션 블러를 활용해 속도감을 연출하는 솜씨 또한 기가 막히다. 창문에 저녁 노을이 비치는 뉴욕의 도심을 날아다니는 기분은 오직 <스파이더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치다. 조금 오버하자면, 이 웹 스윙 하나만으로도 <스파이더맨> 구매를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


액션도 마찬가지다. <스파이더맨>의 액션은 심플하고, 호쾌하다. 피가 튀는 묵직한 싸움을 원한다면 아무래도 실망하겠지만, 대신 만화적인 발랄함과 날렵함이 가득하다. <배트맨: 아캄>시리즈의 그것을 한 톤 밝게 만든 모습을 생각하면 되겠다. 약간 과장된 듯한 손맛도 좋고, 후반부로 갈 수록 점점 새로운 적들이 나와 머리를 써야 하는 점도 멋지다. 또 의외로 마냥 쉽지도 않다. 달리 말하면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계속 유지된다는 점인데, 이는 <스파이더맨>처럼 캐주얼한 외형을 가진 게임에 있어 큰 장점이다. 다채로운 보스전도 마찬가지다. 비록 보스들의 패턴이 그리 다양하지 않고 공략법 또한 비교적 간단하지만, 다들 개성이 살아 있으며 보스들 간의 모션 재활용이 없어 정신없이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점은 바로 <스파이더맨>이 의외로 탄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위쳐 3>나 <레드 데드 리뎀션 2>, <갓 오브워>에 비할 바는 아니다. <스파이더맨>은 어디까지나 슈퍼 히어로 게임이고, 따라서 클래식한 슈퍼 히어로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영웅과 희생과...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거기에 각종 액션과 미션을 끼워넣어야 하니 다소 불균질한 부분도 눈에 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이런 진부한 내러티브를 진부하지 않게 진행하는 놀라운 솜씨를 발휘한다. 의외로 몰입하게 되며, 의외로 다음 스토리의 진행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차근 차근 쌓아올린 이야기의 종장에 이르러서는 상당한 감정적 울림을 주기까지 한다. 그간 나온 스파이더맨 영화나 게임들과도 전혀 겹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앞으로 나올 슈퍼 히어로 게임들에게 하나의 참고점이 될 수도 있을 정도다.


결론적으로, <스파이더맨>은 재미있는 게임이다. 히어로 게임으로써의 태생적인 한계를 받아들이는 대신 오직 히어로 게임, 그 중에서도 스파이더맨 게임만이 줄 수 있는 재미를 잘 응축해냈다. 당연히 단점이 없지는 않다. 마일즈는 반가웠지만 스토리상 꼭 필요했을까? 싸우지 못하는 잠입 플레이를 넣고 싶었다면 메리 제인에게 더 많은 비중을 줬으면 될 일인데. 반대로 게임의 무대가 되는 오픈 월드는 상당히 알맹이가 부실하다. <위쳐 3>, <레드 데드 리뎀션>, <GTA>등 방대한 오픈 월드를 자랑하는 게임들과 비교하면 그 크기도 작고 즐길 수 있는 컨텐츠 자체도 그리 많지 않다. 더군다나 몇몇 사이드 컨텐츠는 단순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살짝만 변형해 복붙한 티가 난다. 쫓는 것이 비둘기든 드론이든 아니면 도시의 스모그든 실제로 플레이어가 하는 일에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일까. 하지만 이런 단점들이 <스파이더맨>의 성취에 흠집을 내지는 못한다. 장점이 줄 수 있는 만족감이 그만큼 다른 게임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의 팬이라면 무조건 해봐야 할 타이틀이고, 팬이 아니더라도 무난히 재밌게 할 수 있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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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2018)
2019. 1. 23. 22:22 - 북북서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


사진출처 다음영화, imdb


디즈니의 <주먹왕 랄프>(2012)는 미생물에게 인격을 부여하는 픽사식 애니메이션의 오락실 버전이다. 8비트 버전 <토이 스토리>라고 해도 좋겠다. 레트로 아케이드 게이밍의 캐릭터들이 사실은 살아있다면? 오락실 불이 꺼지면 인간들 몰래 모여 술도 마시고 서로의 게임에 놀러간다면? 생각만 해도 재미있는 장면을 많이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꽤나 괜찮은 소재다. 그리고 결과물인 영화 역시 꽤나 괜찮았다. 이야기도, 캐릭터도, 코미디도 어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는 수작이었다. 혹시 디즈니나 픽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 <주먹왕 랄프>를 아직 안 봤다면 꼭 보시라. 넷플릭스에도 있다.



다만 <주먹왕 랄프>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오락실, 즉 아케이드 자체가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에 익숙한 밀레니얼들은 아케이드 게이밍의 세계를 잘 알지 못한다. <주먹왕 랄프>에 나오는 소닉이 낯설며 장기에프나 큐버트를 더더욱 모른다. 따라서, 그들의 등장에서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이 시점에서 <주먹왕 랄프>는 아이들용 애니메이션이 아니게 되었다. 작품성과 관련이 있는 요소는 아니지만, 제작사로서는 흥행과 연결되는 부분인 만큼 여러모로 아쉬웠을 테다. 그래서일까,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는 그 배경을 인터넷으로 옮겼다. 1편 개봉 당시 속편은 콘솔 게이밍을 소재로 하겠다던 감독의 포부와는 많이 다른 결과다. 저연령층을 포함해 더 넓은 관객층을 타겟으로 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그래서 그 시도는 성공했는가? 


다행히 실패하지는 않았다. <주먹왕 랄프 2>는 재기발랄한 영화다. 이베이와 유투브, 버즈피드를 비롯한 영미권 인터넷 문화를 스크린으로 잘 녹여 냈고, <스타워즈>부터 <곰돌이 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그리고 예고편에 나온 디즈니 공주들까지 미디어 공룡 디즈니의 초호화 저작권 자랑도 진귀한 볼거리다. <주먹왕 랄프 2>는 이렇듯 화려한 물량의 폭격을 통해 '다음엔 또 뭐가 나올까'하는 기대감을 영화 내내 끌고 가는 데에 성공한다. 가볍고 즐겁게, 내내 감탄하면서 볼 수 있는 영화라는 뜻이다 (그리고 카 체이스 씬의 퀄리티가 생각보다 엄청나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이야기의 예술이지 천하제일 레퍼런스 대회가 아닐 것이다. 재치있고 다양한 대중 문화의 인용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요소이다. 아무리 가니쉬가 다채롭고 맛있어도 스테이크의 퀄리티가 좋지 못해서야 제대로 된 파인 다이닝이라 칭하기 어렵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모든 가니쉬를 걷어낸 <주먹왕 랄프2>의 스테이크는, 조금 얄팍하고 설익었다.


<주먹왕 랄프>의 구조가 기본적으로 <토이 스토리>를 위시한 픽사식 애니메이션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이야기는 앞서 했다. 하지만 <토이 스토리>와 <니모를 찾아서>, 그리고 <주먹왕 랄프> 1편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단순히 그 소재가 독특하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 전체를 지탱하는 주제와 이야기가 단단하게 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었다. <주먹왕 랄프 2>는 반짝거리는 소도구와 화려한 아이캐치를 잔뜩 사용해 관객들의 주의를 내내 화면에 붙잡아 두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게 전부다. 시선은 끌지만 막상 보여주는 이야기가 별다른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헐겁고, 종종 부자연스럽다.


가장 큰 피해자는 단연 주인공인 랄프와 바넬로피의 캐릭터다. 1편에서는 두 명 모두 명확하고 공감이 가는 동기와 감정선을 가지고 있었다. 2편에서는 아니다. 거의 역대급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바넬로피는 답답해졌고, 랄프는 거의 집착에 가까운 의처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극에 갈등을 부여하기 위함이라고는 하나 도가 지나쳤다. 캐릭터들이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는 합당한 이유가 아니다. 



요약하자면,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는 조금 아쉬운 후속작이다. 여러가지 볼거리는 풍성하나 탄탄한 서사에서 오는 만족감은 부재한다. 저연령층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볼거리를 넣으려다 균형이 무너져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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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락>, 2018, 이권


사진출처 다음영화


현실적인 불안과 공포다. <도어락>은 집요하게 혼자 사는 여성들의 악몽을 후벼 판다.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다. 나는 혼자 산다. 아마 물리적인 수단으로는 저항할 수 없다. 경찰은 나를 피해망상으로 여긴다. 내 집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생활을 던져버리고 도망칠 수도 없다.


<도어락>은 이 현실적인 설정에서 오는 몰입감을 이용해 초반을 주파한다.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시퀀스도 기대하시고 주인공의 입장에서 분통을 터뜨릴 준비도 하시라. 몇 개인가의 복선과 장치를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다음 장으로 진행시키는 솜씨도 상당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스릴러가 그리웠다면 <도어락>은 좋은 선택이다. 초반부는 말이다.


무슨 이야기냐면, 어느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도어락>의 이야기는 급격하게 망가진다. 개연성은 붕괴하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과장되어 간다.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었던 사건들은 순식간에 비현실의 영역으로 도약해 초반부를 이끌던 동력을 상당부분 상실하고 만다. 단적으로 마지막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를 보라. 너무나 장르적이고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도어락>이 발디딘 기반이 어디까지나 "현실 공포 스릴러"라는 것이 문제다. 현실 공포 스릴러가 현실적이지 않게 되는 순간 모든 마법은 깨어지고 몰입감은 자취를 감춘다.


전체적인 인과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가 끝난후 모든 진상을 아는 상태에서 앞뒤를 짜맞추어 봐도 도저히 원인과 결과가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결국 도어락을 누른 건 누구였는가? 범인은 우사인 볼트인가?(같이 본 이는 모방범이 나타날까 두려워 일부러 감독이 비현실적인 스케일로 이야기를 부풀렸다는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능성은 낮은 것 같다. 정말 모방범죄를 방지하고 싶었다면 경찰을 그렇게 무능하고 싸가지없게 연출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 했다. <도어락>은 꽤 괜찮은 구슬을 들고 왔다. 줄에 꿰는 것까지도 어찌어찌 해냈다. 하지만 매듭을 제대로 묶지 못하니 애써 줄에 꿴 구슬까지도 모두 흘러 떨어져 버리고, 결국 손에 남는 것은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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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 Hardy in Venom (2018)

베놈<Venom>, 2018, 루벤 플레셔


모든 사진 출처 imdb


마냥 선하지 않은 캐릭터를 내세우는 것이 히어로물 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다.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폭스의 <데드풀>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다(<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일단 무시하도록 하자).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는 흐름이다. 선하고 정의로운 히어로는 이미 너무 많다. 그리고 뻔하다. 평범하지만 어딘가 살짝 나사가 덜 조여진 주인공이 우연히 힘을 얻고는 뽕이 차올라 갖은 사고를 치고 다니다가, 악당의 등장과 조연의 희생으로 히어로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는 영화가, 근 십여 년 간 나와도 너무 많이 나온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결국 문제는 차별화다. 


이런 상황에서 소니는 새로운 "소니 마블 유니버스"의 스타트를 끊을 첫 영화로 <베놈>을 내놓았다. 주연은 톰 하디,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괴물 베놈이 안티 히어로로 나오는 영화란다. 와! 빌런! 와! 안티 히어로! 정말 멋지고 잔혹한 피카레스크가 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쓴맛을 기억했어야 했다. 빌런이라고, 나쁜놈이라고 광고하던 캐릭터들이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비단결같은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을 때의 그 허탈함을 잊지 말았어야 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베놈>은 덜 산만한 <수어사이드 스쿼드>다. 베놈은 빌런이 아니고 주인공 에디 브락 역시 전혀 나쁜 놈이 아니다. 베놈이 이 영화에서 저지르는 진짜 나쁜 짓이라고는 기물 파손이 전부다. 에디의 몸에 들어간 후에는 아예 에디의 비서가 되어 그의 연애를 위해 아낌없는 조언을 베풀고, 나중에는 아예 대놓고 지구를 구하겠다고 분투하기까지 한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 역시 마찬가지다. 시청등급을 낮추기 위해서인지 <베놈>에는 잔인하다고 할 만한 장면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괴물이 사람의 머리를 뜯어먹어도 화면은 핏방울 하나 없이 깔끔하고 카메라는 시종일관 폭력의 형태를 최대한 비껴 담으려고 노력한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정돈된 티가 난다는 이야기다. 과도하게 깔끔하고, 이는 결국 부자연러움을 낳는다. 


물론 그래도 볼거리로서의 <베놈>은 나쁘지 않다. 손발이 늘어나는 특유의 트리키한 움직임도 좋고 완전히 에디의 몸을 감쌌을 때의 육중함도 멋지다. 후반부에 이르러 마치 유화 물감처럼 뒤섞이는 시퀀스 역시 나름대로 신선한 그림이다. 팝콘무비는 관객들에게 말초적인 만족감을 안겨줄 것을 대원칙으로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베놈>은 일단 무난한 액션 영화로서의 요건은 충족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의 장점은 베놈과 에디의 관계성에 있다. 상기했듯 영화판의 베놈은 원작 코믹스의 베놈과는 달리 비교적 순하고 착하며 드립력도 좋다. 이 베놈이 숙주로 선택한 에디와 대화하며 관계를 쌓아나가는 모습은 종종 어색하고 인공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의외의 재미를 선사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베놈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는 징검다리 역할도 수행한다.


Tom Hardy in Venom (2018)


그러나 안타깝게도 <베놈>에는 장점으로 쉽게 가리지 못하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바로 스토리 한 가운데에 뻥 뚫려있는 구멍이 그것이다. 중간까지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던 영화는 어느 순간 갑자기 급정거 후 차선 변경을 시도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영화에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며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 메인 빌런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영화가 방향을 틀 때는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되어야 하며 이 이유는 극 중의 핍진성을 위배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이유여야 한다. 하지만 <베놈>은 그 이유를 관객에게 전혀 전달하지 않는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이유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덜컥거린다는 표현은 약과다. <베놈>의 스토리는 그냥 두 동강이 나 있는 걸 스테이플러로 대충 찍어놓은 모양새다. 대체 왜 그 캐릭터가 입장을 바꿔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나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요약하자면 <베놈>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상당히 다른 영화다. 별다른 사전지식이 없다면 그럭저럭 볼만하겠고, 홍보 자료를 보고 어두운 안티 히어로 영화를 기대하고 갔다면 아무래도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둘 중 어느 경우이더라도 결코 완성도에 대해 높은 평가는 내리지 못할 영화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영화를 다 찍은 뒤 30분에서 40분 가량의 분량을 잘라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다. 그것이 아마도 뻥 뚫린 구멍의 행방일 것이다. 러닝타임을 줄이기 위한 시도였을까?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차라리 애매하게 늘어지는 초반 도입부를 다듬는 것이 맞았다. 지금의 <베놈>은 각본가가 각본을 쓰던 도중 잠시 외계 괴물에게 몸을 빼앗겼다 해도 믿을 정도다. 저예산 영화라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겼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소니로서는 영 만족스럽지 못한 1편임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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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죄와 벌(2017)
2017. 12. 25. 19:56 - 북북서


<신과 함께 - 죄와 벌>, 2017, 김용화

사진출처 다음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은 주호민 작가의 유명 웹툰 <신과 함께>의 저승편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다. 당연히 대대적인 각색이 이루어졌다. 중요한 캐릭터 하나가 사라졌고 본래 별개의 스토리라인이었던 원귀와 김자홍의 이야기가 하나로 묶였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주인공 김자홍이 비극적인 사연을 가진 소방관으로 바뀌었으며 이야기에 액션과 속도감을 붙이기 위한 자잘한 설정 역시 추가되었다. 그 결과, 장단점을 떠나 <신과 함께 - 죄와 벌>은 일단 원작보다 역동적이고 화려하다. 웹툰의 영화화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꽤나 성공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과 함께 - 죄와 벌>은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CG는 분명 화려하고 한국식 어머니즘을 내세운 신파 요소 역시 나름대로 제 기능을 하고 있다. 정의로운 사람이 자신의 삶과 희생을 인정받는다는 핵심 줄거리 역시 강렬하고 보편적인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소재다. 요컨대 영화가 쥐고 있는 이야기 자체는 여러차례 검증된, 즉 "먹히는" 무기라는 거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익숙하고 공식화된 요소일수록 더욱 세밀한 접근을 요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신과 함께 - 죄와 벌>이 신파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상당히 투박하고 너무나 전형적이다.


<신과 함께 - 죄와 벌>, 사진출처 다음영화


카타르시스와 감동이 강해지려면 주인공이 처하는 위기가 치명적이어야 하고 그걸 극복하는 방식 역시 강렬해야 한다. 하지만 원작과 달리 주인공 김자홍은 아예 죽는 순간부터 정의로운 사람이자 귀인이라고 인정받은(심지어 몇몇 지옥은 프리패스할 수 있는 권리까지 주어진) 영혼이다. 반면 그를 심판한다는 판관들은 말 그대로 머저리들이며 각 지옥의 대왕들 역시 디자인만 요란할 뿐 별다른 무게감을 찾기가 힘들다. 자연히 그들에게 애를 먹는 삼차사들 역시 대체 어떻게 40명이 넘는 영혼을 환생시켜온 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하게 비춰지고, 이야기에 시간 제한을 둬 긴장감을 유발하려는 몇몇 장치는 자주 덜컥거린다. 마지막에 와서야 그나마 죄다운 죄가 드러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앞서 말했듯 전형적인 한국식 어머니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요는 저승이라는 시스템 자체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자연히 갈등이 해결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 역시 제대로 증폭되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캐릭터다. 유머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과용된 감이 없지 않다. 가뜩이나 탄탄하지 않은 캐릭터들이 유머에 휘둘려 그 밀도를 잃어버리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가장 큰 피해자는 차태현이 연기하는 김자홍이다(왜 나왔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오달수와 임원희는 언급하지 않겠다). 전반적으로 조금 과장된 연기톤을 보이는 배우들 중에서도 김자홍의 캐릭터는 가장 얄팍하고 과잉되어 있다. 나중에 되짚어보면 이해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극중에서 묘사되는 김자홍은 차라리 떼쓰는 어린이에 더 가깝다. 죄책감과 선함이 혼재된 다면적인 캐릭터성이 표출될 시간이나 대사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유머까지 섞여드니 캐릭터 자제가 주체할 수 없이 얕게 느껴지는 결과를 낳는다.


<신과 함께 - 죄와 벌>, 사진출처 다음영화


원귀의 이야기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원귀는 지나치게 강하고 차사들은 지나치게 허둥지둥한다(세상에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이 그리 희귀할 리가 없지 않은가). 화룡점정은 후반부의 모래폭풍 시퀀스이다. 나는 여기서 대체 내가 뭘 보고 있는 건지 잠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귀의 이야기는 김자홍의 이야기보다는 다소 나은데, 적어도 이해할 수 없이 답답한 전개나 지나치게 얄팍한 캐릭터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도경수와 김동욱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정우만큼이나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성인 남자 대부분이 군필인 나라에서 군부대의 고증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나,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결국 <신과 함께 - 죄와 벌>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한국적인 영화이다. 한국적인 정서를 한국적인 설정의 판타지로, 그것도 깔끔한 CG(다소 대륙의 향이 나긴 하지만)로 담아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관객을 울릴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한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다. 그 신파극을 지탱해줄 이야기가 너무 자주 삐걱거린다. 부분이 전체의 합보다 위력적인 영화다.


<신과 함께 - 죄와 벌>, 사진출처 다음영화



추천
신파극을 좋아하시는 분
원작의 영화화가 궁금하신 분
한국적인 판타지의 가능성을 보고싶으신 분


비추천

신파극을 싫어하시는 분

논리적인 이야기 전개를 선호하시는 분

세련된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



덧. 죄가 없음이 판명되면 환생시켜 다시 죄를 지을 기한을 주는 시스템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생각해볼만 한 문제다.

덧 2. 왜인지 모르겠는데 이정재는 배역이 아니라 그냥 이정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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