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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2017. 2. 6. 09:44 - 북북서


나는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이들을 경계한다. 쉽게 확신하는 사람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고 믿는다. 욕구의 다섯 단계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망치를 쥐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고 했다. 거의 모든 종류의 신념은 망치이다. 한번 손에 들면 세상의 모든 튀어나온 것들을 내려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된다.


사람은 주관적이다. 철저히 객관적인 시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 통계가 있다. 기업의 입사면접 합격률에 관한 통계다. 면접의 시스템이 공정하고 면접관이 객관적이라면 지원자들의 합격률은 시간에 상관없이 균등해야 한다. 적어도 통계상 유의미한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합격률은 균등하지 않았다. 두 시간대가 문제였다. 점심식사 이전 시간대에 면접을 본 지원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탈락했다. 반대로 점심식사 이후에 면접을 본 지원자들의 합격률은 눈에 띄게 높았다. 통계는 조심스럽게 한 가지 해석을 제시한다. 변수는 점심식사의 여부다. 면접관들이 배가 고프고 피곤하면 지원자들에 대해서도 박한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으면 지원자들에 대한 평가 역시 후해진다.


물론 이 해석은 한 가지 가능성일 뿐이다. 정말 무엇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나는지는 불투명하며 아마 다른 변수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을 감안하더라도 이 통계는 불편하다. 면접관들 스스로는 이 경향을 자각하고 있었을까? 아마 아닐 거다. 쟬 떨어뜨리는 건 내가 배가 고프고 슬슬 점심시간이라 빨리 끝내고 밥이나 먹으러 가고 싶기 때문이야, 하고 지원자를 탈락시켰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물론 개중에는 정말로 그런 악마도 있을지 모르지만). 모르긴 몰라도, 음, 성적은 좋지만 태도가 좀... 이라거나, 스펙은 화려하지만 전형적인 북스마트로군, 같은 생각을 하며 가위표를 그었을 공산이 더 큰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자신은 엄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믿을 것이다. 실제로 그 결정을 내린 것은 다름아닌 텅 빈 위장의 영향임에도. 


물론 우리가 객관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사회는 중심축이자 기준으로서 기능할 가치중립적인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순결한 객관성이란 어떤 방향성의 끝에 놓일 일종의 에이도스일 뿐, 그 끝에 닿기 위한 모든 노력은 주관적이다. 이 사실을 잊은 채 자신의 생각 혹은 신념이 객관적으로 무결하다고 믿는 순간 거의 반드시 사고가 일어난다. 스스로의 논리에 매몰되어 괴물이 되어버린 이들을,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본 적이 있다.


그런 사태를 방지하는 방법은 하나다. 의심하는 것이다. 확신으로 가득 차더라도, 하지만 만약에 내가 틀렸다면, 이라는 가정이 들어설 자리는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어야 한다. 망설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남이 맞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저게 못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는 이는 섣불리 망치를 휘두르지 못한다. 못으로 보이는 것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교훈적인 논설문을 내가 왜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어떻게 끝내야 할 지는 더더욱 감이 안 잡힌다. 그래서 그냥 끝낼 거다. 내일 봅시다.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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