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사진출처 다음 책.
페미니즘은 옳다.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며 같은 권리와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이견이 있다면 어느 부분, 어느 의미에서의 평등을 어떤 수단을 통해 추구할 것인지에 대해서여야 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근거로 타인의 고통을 측정하고 평가하려는 시도는 높은 확률로 오만하다.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한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이갈리아의 딸들>은 가장 페미니스트적인 소설 중 하나이다. 1977년 초판이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담고 있는 메시지가 신선하고도 강렬했던 탓에 아직까지도 회자되며 읽히는 책이다. 소위 "미러링"이라는 것의 시초이자 가장 완벽한 예이기도 하다. 가상의 나라 이갈리아에서는 전통적인 성역할이 현실과 정 반대이다. 모든 단어와 호칭, 역할과 권위가 여성중심적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남성은 여성의 선택을 받아 순종하도록 교육된다. 여성은 활동적이고 육체적인 활동 역시 즐기는 반면 남성은 화장을 하고 장식이 치렁치렁한 옷을 입는다. 여성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남성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본다. 여성은 자연스럽게 가슴을 내놓고 다니지만 남성은 자신의 성기를 가리는 전용 속옷을 입어야 한다. 주인공이 뱃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 주인공의 어머니는 피우던 시가를 내려놓고 남자가 무슨 뱃사람이냐고 쏘아붙이는 식이다.
브란튼베르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상생활에 쓰는 언어의 성별 표현까지도 반전시킨다. 예를 들면 남자가 man이고 여자가 woman으로 남자가 기본형인 것을 뒤집어 여자를 wom, 남자를 manwom으로 명명한다. 인간은 mankind가 아닌 womkind로 지칭되며 전지전능한 신 역시 여성형인 도나 제시카라 불린다. 한국인들에게는 조금 낯설 수도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달린 성 역시 마찬가지다. 리즈도터Lizdaughter, 메이도터Maydaughter등의 성은 오늘날 영미권에 흔히 존재하는 존슨Johnson, 데이비슨Davidson 등의 남자이름+son을 여자이름+daughter로 치환한 형태이다. 작가가 얼마나 꼼꼼하게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이런 세상에서 이제 막 사춘기를 맞이하는 어린 소년 페트로니우스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가 겪는 차별과 괴로움을 묘사함으로서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현실에 상당히 남성중심적인 구도가 숨어 있음을 까발리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야기 자체로서 엄청나게 재미있는 책이라 할 수는 없겠만, 배경 자체가 워낙 흥미롭고 현실과 비교해보며 생각할 거리가 많아 페이지를 계속해서 넘기게 된다. 픽션의 본질이 거짓으로서 진실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했을 때, <이갈리아의 딸들>은 유쾌하고 강렬한 픽션이다. 자신이 여성혐오를 위시한 젠더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은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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